산 자의 하나님(마태복음 22:23-33)

조회 수 1936 추천 수 0 2010.06.07 18:58:57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묘한 질문을 던지므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했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은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라고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의 의도는 부활이 현실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두개인들의 생활 자체가 현실적이고 세속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묘한 논리를 내세워 부활을 부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활 신앙이 없었을 때에 어떠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만 할 것입니다.

첫째로 부활 신앙이 없을 때는 영적인 무지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치관과 통찰력이 말씀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문제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까닭에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세속화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곧 그들 자신이 인간적인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보다는 사회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그들의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통해서 영적인 무지가 우리 속에 안겨 줄 파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으로 교회를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사회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해서 세워진 곳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영적 바탕 위에 세워진 것이므로 우리가 도저히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오늘날의 교회를 말한다면 그도 역시 사두개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 자신에게 있어서 영적인 무지를 하루 빨리 벗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부활 신앙이 없을 때는 영적인 역사를 무시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을 베푸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놀라운 역사를 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보여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앞에 다가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깎아 내림으로 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지함을 드러냄으로 하여 예수님의 과거의 모든 행적들을 백지로 돌리려 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 것은 육적인 교훈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부활과 천사와 영의 세계를 부인하고 각종 기적과 이적들이 비합리적인 사실로 스스로 단정하면서 부활이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창세기의 모든 사건을 신화나 전설로 해 버리려고 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영적인 역사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역사를 무시하는 경우를 봅니다.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든지 각종 능력을 받았다든지 예언의 말씀을 한다든지 어느 집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만났다든지 하는 등의 말에 대하여 외면하려 하게 되므로 인하여 사두개인들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 영적인 역사에 대하여 결코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셋째로 부활 신앙이 없을 때는 말장난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 앞에 나아온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너무도 터무니없고 장난기 섞인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장난기 섞인 대화를 나눈 적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세속적인 모습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는 빛과 소금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 말을 잘한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우리 자신을 수다쟁이로 만드는 경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의 형태로 봐서 얼마든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반 그리스도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는 서로 대화가 있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속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대화 속에서는 우리가 결국 하나님을 배역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말에 조심할 수 있는 생활의 자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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