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자 예수님(마태복음 8:18-34)

조회 수 1669 추천 수 0 2010.06.07 18:47:14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8:26)

본문의 내용 속에서는 권세자로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풍에 휘말렸던 바다를 잠잠케 하신 일이나 마귀들을 내 쫓으신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우리는 주님이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새삼 발견하게 되면서 더불어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 할 것을 다짐하면서 말씀을 펼쳐 보일까 합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18-22)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방황을 거듭하고 있고 많은 노력에 비해서 결실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더욱이 현대 문명 속에서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는 제자로서의 삶은 타락과 부패의 모습들이 더욱 가중되어 가기에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요구하고 계시는가하는 문제를 말씀을 통해 진단해 봅시다.

1. 예수님을 좇고자 했던 서기관

(1) 서기관의 계산된 고백

당시 서기관이라 함은 율법학자요, 예언자요, 성경을 맡은 자로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자들이었습니다. 더욱이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 당시 랍비라 칭함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많은 서기관들이 명예욕에 자신을 빼앗겼고 이미 백성들로부터 점차 외면당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치와 야합하여 부패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말씀 선포보다는 개인적 인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서기관의 고백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선생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내가 선생님을 따르리이다"(19)라는 말로서 매우 절박한 듯한 어조로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말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순수하다기 보다는 명예 회복을 위한 그의 노력이 숨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곧 꿈과 야망을 위해 따르고자 했던 그의 저의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래의 사명은 접어 두고 오히려 많은 무리를 거느리시던 예수님의 뒤에서 영광을 취해 보겠다고 하는 안일한 그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우리가 자신의 위치에 얼마나 충실히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의 삶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가난하심을 나타내 주셨고, 또한 낮아지심을 실천하심으로 인간의 고통에 참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영적인 의미로 여우(헤롯), 새들(사탄)에 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그 분의 교회를 세우는데 힘겹다는 의미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살린다면 예수님께서 복음 사역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물질을 전혀 의지하지 않았던 분이셨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안정과 부유의 삶은 전도자를 부패케 만듭니다. 이는 교회사를 통해 쉽게 엿볼 수 있는 데 교회가 안정권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부패된 모습을 지니고 있었고, 핍박과 고통을 당할 때 기독교회는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에게 좀 더 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실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의 현재의 삶을 포기토록 요구하심으로서 좀 더 신중한 결단을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안일하고 무분별한 제자의 삶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의 사역을 위해서는 세상의 어떠한 조건과 배경도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는 생활을 주님은 원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부친 장사의 허락을 청하는 제자

(1) 제자의 생각

부모의 장례를 치룬다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기본적인 도덕 윤리에 해당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곧 인간들 스스로 묶어 놓은 틀 중에서 가장 풀기 힘든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제자에게 있어서도 과거로부터 이어온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먼저 내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지내게 허락하옵소서"라는 부탁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많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만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이 제자와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비단 이 제자의 생각이 당시의 제자 한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닌 모두의 생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무엇이 먼저인가?

여기서 주님께서 가르치시고자했던 것은 영적인 질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게 함으로서 그것을 따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산 것과 죽은 것 중 어느 것을 위해 살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심으로서 결론적으로 주님을 좇는 일이 우선됨을 가르치시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연인은 죽은 자라 불리웁니다. 그 까닭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기 까닭입니다(엡 2;1). 이에 반해 예수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 자는 산 자라 일컬어집니다. 이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주님을 따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실제적인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를 수도 거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가장 우선되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을 좇고자 했던 서기관의 모습과 부친 장사의 허락을 청하는 제자의 모습은 오늘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안일한 사역을 생각하거나, 세상과 예수님을 병행해서 섬기려는 생각은 우리의 뇌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런 사심 없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생애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능력은 병 고치시는 일뿐만이 아닌 온갖 자연 만물을 통치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본래 갈릴리 바다는 해면보다 약 200미터 정도 낮은 곳으로서 잠잠하다가도 불시에 광풍이 휘몰아치는 곳이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어부로서 살아왔던 제자들조차 알 수 없었던 이 광풍을 마치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어닥치는 환난과도 비교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진정한 믿음의 모습을 진단해 보고자 합니다.

1. 광풍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

처음 광풍이 일었을 때에 그들은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해 배를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한계 상황에 이르자 결국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라고 하면서 비전문가라고 생각했던 예수님께 문제의 해결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찼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볼 수 없이 허둥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항상 우리 곁에 모셔 두고 살면서도 환난이 닥쳐 올 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시간을 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인생에 경험이 풍부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문제(광풍)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광풍을 만난 예수님의 모습

예수께서는 밤새 기도하시고, 매일 여행하시는 가운데 매우 피곤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무시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바다 여행 중에도 제자들을 훈련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광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서도 주무셨다고 하는 것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교훈 하시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주무시던 예수님은 깨우는 제자들을 향해 먼저 꾸짖으시고 광풍을 잔잔케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이 적음을 꾸짖으신 예수님은 좀 더 확신 있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에 주님은 먼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어려움 속에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문제에 대해 먼저 해결해 주신 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신 후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3. 제자들의 변화

여기서 예수님은 믿음과 두려움이 서로 반비례하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곧 믿음이 있는 자일수록 두려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사단이 심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내면에 예수님을 심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광풍이 이는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면에 변화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이어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잔잔하게 되자 그들은 그 권세에 대해 의문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큰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는데, 풍랑이 그들 앞에 일고 있었을 때는 바다만 바라보다가 해결 된 이후에는 예수님만 주시해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던 제자들, 그들은 새로운 믿음의 계단을 밟아 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므로 주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 하실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제자들이 다급했을 때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의지하지 못한 까닭도 있겠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상에서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예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을 좀 더 성숙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속에 있는 두려움을 말끔히 제거해 버리고 오직 주님의 역사 하심만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마귀들린 자들을 고치신 예수님

예수님은 마귀 들린 자들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고 계실 뿐만 아니라 영적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임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먼저 마귀의 존재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사납고 파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생명을 해치는 일과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가 사납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또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영의 세계를 알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까닭에 말세 지말에 이른 오늘에 있어서 그들은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자들을 고치실 때에 돼지 떼에게 들여보내셨는데, 이는 2,000마리의 돼지 떼보다 한 영혼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 주시는 귀한 교훈입니다. 복음의 절대성을 말한다면 생명을 구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쫓아내려고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떠나기를 바랐던 까닭은 물질적 타격을 줄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의 세대도 물질 문명이 예수님을 대신하려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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