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마태복음13:3-8)

조회 수 1366 추천 수 0 2010.06.07 18:50:26

그분께서 많은 것을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씨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리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날짐승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시들어 버렸고 더러는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지매 가시나무가 돋아나 숨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느니라(마태복음13:3-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는 언제나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 비치는 모든 환경과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재료가 됨을 가르쳐 주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연을 통하여 비유를 드시는 모습은 창조주로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본문의 '씨뿌리는 비유'는 우리와 복음의 관계를 비교적 분명하게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비유가 그 의미를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해설하고 계신다는 점도 특이할만한 부분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비유가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복음을 영접하기 전의 상태를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 상태를 네 가지로 분류하시고 결실치 못하는 이유와 결실에 따르는 결과를 친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 속에서 나의 마음의 상태를 진단해 보고 좋은 밭을 이루어 풍성한 결실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길가 밭

우리는 교회 안에서 수 십 년을 다녀도 전혀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사람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배를 마친 후 오늘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물었을 때 설교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고 즉시 사단에게 빼앗기는 그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길가 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길가는 농부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단단한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가 심기우지 못하고 노출된 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새들의 양식이 되어서 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묵은 땅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길가 밭에 비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예를 들 수 있다면 모태 신앙인 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혀 영접할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상 사람들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말씀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실치 못한다는 측면에서 교회 안에서 그 대상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어릴 때(모세)부터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너리즘(습관)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구원에 대한 절박함, 죄인이라는 의식, 예수님의 도우심에 대한 필요 등이 결여되면서 말씀을 지식 이상의 어떤 의미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세월과 더불어 마음은 더욱 강팍해지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떠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의 백성을 돌보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렸으며, 메시야 되신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났지만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식으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무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알면서도 경배하지 아니하였고, 직접 나무에 달아 죽였습니다.결국 지식은 있지만 생명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길가밭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결국 사단에게 이용 당하게 되어 있고, 생각없는 그는 결국 사단의 노리개로 전락할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지식을 쌓아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영접하여 결실해야 합니다.

돌 밭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열매를 맺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기도 전에 죽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기복주의(물질적인 복을 구하는)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대 교회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병낫기를 구하고, 환란에서 건짐받기를 구하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간구입니다. 그러나 인색하여 이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육신의 안락과 평안과 형통함을 추구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자아를 중심으로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더 이상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라 죽게 되는 형국을 맞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으며, 양식을 주시고, 거할 곳을 제공하시며, 종국적으로는 그 분의 나라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떠합니까? 아직도 자아가 중심이 되어서 좀 더 많은 물질, 명예, 권세를 얻으려 합니다. 마치 보험에 들 듯이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도 잘되고, 천국도 보장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 그들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현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천국은 자아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을 하나님의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뒤로 한 채 믿음에서 멀어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

가시떨기 밭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하여 잠시 근심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베드로전서1:6)

너희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베드로전서5:7)

세상의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근심과 걱정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돈을 벌어도 정직하게 해야 하고, 핍박을 당해도 참과 용서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가 오래 지속되어서 결실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도 성도들이 시험을 인하여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오히려 근심이 큰 기쁨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 일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요셉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에 대한 원망과 분통함을 잊고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을 다해 열쇠 맡은 자(재산 관리인)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편해질 무렵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안에서도 모범수가 되어 죄수들을 관리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감옥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의 배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0세가 될 때까지 그의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염려와 근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일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곁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창 39:2, 23).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기근에 허덕이는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을 애굽으로 데려와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염려는 곧 믿음의 부족을 의미합니다. 염려와 유혹을 가시덤불과 같은 것이어서 결실치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권고합니다. 이제 염려를 내려놓으십시오.

좋은 땅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라(예레미아서4:3)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임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세아10:12)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와 잡초를 뽑아내고, 땅을 갈아엎어, 돌을 걸러내고, 흙을 부숴뜨린 후, 거름(비료)을 주었을 때 비로소 열매 맺는 밭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는 육신의 각종 욕심을 내리고, 죄의 요소들을 제거하며, 심령을 겸손하고 온유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은 마음 밭을 일구어 가는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좋은 마음 밭이 나의 노력과 의지로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많은 경건의 훈련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심령을 개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거름(비료)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영적으로 본다면 환난이나 핍박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름은 썩힌 물질입니다. 그러나 거름이 없이는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환난이나 핍박은 실상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다면 그는 결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땅을 부드럽게 한 후 썩혀서 땅속으로 들어온 씨를 썩힐 때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온유하고 겸손한 품성에 환난과 핍박을 통한 고통이 스며들어와 좋은 마음 밭을 이루고 말씀의 씨가 내 안에서 같이 썩어지며 녹아져 간다면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실의 양을 100배, 60배, 30배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땅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나의 삶 속에 열매가 있는 지의 여부를 알아보고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

너희는 내 법규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하여 새끼를 낳게 하지 말며 네 밭에 씨를 섞어 뿌리지 말며 아마와 양털을 섞은 옷을 입지 말라(레위기19:19)

좋은 땅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상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심기워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땅은 언제나 정직합니다. 뿌린 씨대로 결실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다면 걸러내고 심는 단계부터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 외에 다른 종자(교리, 종교, 관습, 유전 등)들을 섞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교회 안에는 복음 아닌 것들이 무수히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보다도 칼빈이나 알미니우스, 웨슬레, 그 외의 철학자들이 강단을 점령하고 있고 카톨릭의 종교적 행위들을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서 답습하고 있으며, 각종 절기와 날들을 의미도 파악하지 못한 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뿌려야 할 씨는 오직 복음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은 결국 우리의 밭을 망치고, 잡초가 무성한 쓸모 없는 밭으로 만들 것입니다. 오직 복음 안에서 살아가시고 열매 맺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좋은 밭을 만들어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필생의 과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계속해서 개간하지 않는다면 결국 잡초만 무성한 쓸모 없는 황무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속적으로 경건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오직 속되고 늙은 부녀들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도리어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디모데전서4:7)

내가 다 되었다고 졸며 자고 있을 때 마음 밭은 점점 쓸모 없어질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을 가지고 환란과 핍박을 감사하며 풍성한 열매 맺기를 고대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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