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적(32) 마귀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자(마12:22~30, 눅11:14)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그분께 데려오매 그분께서 그를 고쳐 주시니 눈멀고 말 못하는 자가 말도 하고 보게 되니라.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이르되, 이분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냐? 하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듣고 이르되, 이자가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내쫓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왕국마다 황폐하게 되며 스스로 분쟁하는 도시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탄이 만일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붑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으면 너희 아이들은 누구를 힘입어 그들을 내쫓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으면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재산을 노략하겠느냐? 결박한 뒤에야 그가 그의 집을 노략하리라.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널리 헤치는 자니라. (마12:22~30)

 

이미 마태복음 9장에서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자에 대하여 소개했지만 여기서는 말을 못 할 뿐만 아니라 눈 까지 멀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다면 그 인생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매우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었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귀에 의해서 매우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꾸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눈멀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돈과 명예, 혹은 지식과 권세와 같은 것들이 그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던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서 이 모든 것들이 헛되며, 오직 젊은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권면 하고 있지만(전12:1), 사람들은 여전히 마귀들의 지배 아래 있는 것들에 눈이 멀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지만(딤전6:10),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사탄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명예와 정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 역시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이 모든 것들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어마어마한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려 눈멀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심으로 그분께서 바로 마귀의 모든 권세들을 능히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한 사람의 질병을 고치시는 것으로 끝마치려 한다면 그것은 껍데기만 보고 정작 중요한 내용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그분을 믿는 우리들로 하여금 마귀의 권세를 이기게 하려는데 있습니다(눅9:1,히1:4). 우리가 제 아무리 많은 교훈과 경험들을 통해서 신실한 삶을 살고자 해도 그들은 결코 마귀의 권세 아래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그의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들이 마귀에게 속해 있는 동안에는 참 된 행복을 경험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신 후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마귀를 마귀들의 통치자에 의해서 쫓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통해 보았을 때 전혀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마술사들과 속이는 자들이 이미 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속이는 자들에 의해서 기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무속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능력들을 사람들 앞에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각종 이방종교의 제사장들이나, 마술사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아 말은 곧 일시적으로 마귀의 힘을 빌려 마귀 들린 자를 고칠 수도 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이러한 측변에서 본다면 바리새인들의 말이 결코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시고자 하였던 것은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마귀를 능히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그들의 왕, 즉 메시야이심을 보이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바리새인들은 오직 기적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백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적만을 보았을 때 마귀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놀라고 흥분하여 예수님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들 모두가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보이시는 참 된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으면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28)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이 이 왕국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놀라고, 한편으로는 그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왕국은 시작이 되었지만 왕국의 백성들은 그 왕국이 세워지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강한 자, 즉 사탄을 먼저 결박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29) 그 후에야 집을 노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시는 기적은 곧 예수님께서 왕국의 건설을 위해 완벽한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완벽하게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들이 진정 메시야를 바르게 이해하고 영접했다면 아마도 유대인들의 역사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그토록 바랐던 메시야를 버리고, 그들 스스로 고대했던 또 다른 왕을 기다림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이 이방인들에 의해 확장되는 역사를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결론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널리 헤치는 자니라”(30)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편에 서서 사는 자라야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갖고 있으면서도 결코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백성답게 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기적을 통하여 호기심을 유발하고, 스스로 영웅이 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행했고, 또한 사람들을 감동시켜 영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 비교하면 예수님은 매우 초라한 인생을 사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의 이면에 있는 에수님의 뜻과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권세를 멸하시고, 오늘날 마귀의 권세아래서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들을 고치시고, 장차 다가 올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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