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 건너편에 있는 게르게스 사람들의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마귀 들린 두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그분을 만났는데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가지 못하더라. 보라,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되기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나이까? 하더니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으므로 이에 마귀들이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내쫓으시려거든 우리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하소서,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가라, 하신즉 그들이 나와서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니, 보라, 온 돼지 떼가 경사진 곳을 세차게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물 속에서 죽으니라. 돼지를 지키던 자들이 도망하여 자기들의 길로 가서 그 도시로 들어가 모든 일과 마귀 들린 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고하니 보라, 온 도시가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가 그분을 보고는 그분께서 자기들의 지역에서 떠나실 것을 그분께 간청하더라. (마8:28~34)

 

마귀들려 무덤 사이에 있던 두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기적은 공관복음, 즉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걸쳐서 모두 소개되고 있습니다. 지명에 있어서 마태복음에는 게르게스(Gergesenes)로, 마가복음에는 가다라(Gadarenes)로 소개되고 있지만 이 두 지명은 같은 장소입니다. 이미 성경 안에서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름으로 소개된 지명이 상당수 있습니다. 가령 갈릴리 바다를 여호수아 12장 3절에는 긴네롯 바다로, 요한복음 6장 1절에서는 다베랴 바다로 불려집니다. 또한 시내산을 때로는 호렙산(출3:1)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각 복음에서 기록된 마귀 들려 무덤 사이에 있던 두 사람을 고치시는 기적은 다른 지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동일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하여 마귀 들린 사람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때때로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 들린 자는 밤낮으로 산이나 무덤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베고 있었습니다(막5:5). 그는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귀에 의해 그는 절제력을 잃고 몸을 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행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삶을 실패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경우도 목격합니다.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고 싶은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술과 담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떠한 아픔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끊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여전히 그것을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몸에 깊은 상처를 가져다 주는 술과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마귀의 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마귀 들린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은 여러 번 족쇄와 사슬로 그를 묶었으나 그가 사슬을 끊고 족쇄를 산산조각 내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힘으로 사슬을 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이미 자신 안에 또 다른 존재, 즉 마귀의 힘을 빌려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맑은 정신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술과 마약, 혹은 주술과 같은 것들을 동원하여 상식 밖의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의 말에도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주관하는 것은 오직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는 점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은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분께 경배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여”라고 합니다. 물론 마귀는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 들린 두 사람은 오직 마귀에 의해 조종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기에 마귀 들린 사람은 매우 신앙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에 대하여 의심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매우 앞 선 믿음의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마귀 들린 자들이었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이단들을 보십시오. 누가 그들에 대하여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더욱 열심히 있고, 더욱 종교적이며, 때때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적으로 훌륭하다고 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영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며, 도덕적인 타락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자해를 하기도 하며,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것은 결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갖게 될 것입니다(딤후1:7). 또한 깨끗하고 거짓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벧전1:22). 그는 가장 맑은 정신으로 상식에서 벗어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간혹 상식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명예를 인생의 목표로 사는 사람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전부인 것으로 아는 자가 성경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자라면 세상에서 덕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마귀 들린 두 사람에게서 마귀들이 쫓겨나고 돼지 떼 2,000마리에게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돼지 떼가 바다에 빠져 죽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마귀들이 쫓겨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마귀 들린 사람이 다시 정상인이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게 될 엄청난 재산의 손실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에게 마을을 떠나달라고 간청합니다.

 

가다라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솔직합니다. 그들은 지금 영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귀 들린 사람이 회복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호기심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돼지 떼들이 바다에 들어가 수장되는 장면을 보면서 혹시나 있게 될 앞으로의 재산상 손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영적인 문제보다는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딤전6:10), 사람들이 버리기 가장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인생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벧전1:24).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에 끝이 없을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지만, 그들은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히9:27). 그들은 눈앞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마귀의 힘을 빌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많은 일들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부디 온전하신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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