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마태복음 28:1-20)

조회 수 3171 추천 수 0 2010.06.07 19:04:04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고 말씀하시던 대로 일어나셨느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28:6)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살아나신 무덤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함께 있었고 그들은 변함 없는 진실과 사랑을 가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의 힘에 의하여 날이 밝기도 전에 오게 됨으로서 천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본 장의 내용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 주변에서의 상황들 또한 예수님의 명령하시는 일들을 살펴봄으로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안식 후 첫날 날이 밝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주의 천사를 보는 순간 무서워 떨며 있었고 문을 지키던 파수꾼들 역시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하여 떨고 있었던 데 대해서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부활신앙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부활하실 것에 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하셨지만 실지로 그들의 내면에는 부활의 소망이나 믿음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더우기 문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혹시 예수님이 부활 하시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그들을 더욱 떨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소망이나 믿음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들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살수밖에 없습니다.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무서운 시체만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죽은 자를 앞에 두고서는 슬픔과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했던 여인들은 슬픔으로 가득 찼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역시 예수님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부활하실 것에 관하여는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슬픈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할 때나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할 때에 항상 슬픈 얼굴을 지니고 자신의 죄를 너무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신앙생활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활 신앙을 믿는 것입니다. 슬픈 믿음, 슬픈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셋째로 그들은 사망 권세를 떨쳐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찾았고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은 두려움 속으로 스스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 자체에 부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 자체는 우리 죄악을 인함이지 십자가 자체가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여인들을 보는 것과 같이 무덤에서 예수님을 보려 했지만 찾지 못하자 천사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 한데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기쁨을 누리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사망 권세가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괴롭힌다 할찌라도 이를 떨쳐 버리고 부활의 신앙으로 기쁨을 누리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주었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변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두려워 떠는 여자들에게 사명을 주었을 때 슬픔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일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명을 받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만이 진정한 기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자들이 달려갈 때 예수께서 여인들을 만나 줌으로서 평안하라 말씀하심으로 여인들로 인하여 경배토록 만드셨습니다. 즉 여인들로 하여금 부활 신앙을 믿을 수 있도록 함으로서 만 왕의 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믿는 이들을 통하여 그의 왕 되심을 나타내고자 하시며 또한 그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병든 자도 일으키시고 슬픈 자를 위로하시며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절망에 빠진 자에게 소망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이후에도 예수님은 끝까지 말씀을 가르치시고자 하셨고 그래서 여자들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오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점은 사명이 있을 때에만이 믿음이 자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맡은 바 직분에 대하여 철저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믿음이 자라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볼 수 있었던 여인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고 은폐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에 관하여도 부인하고 은폐하므로서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더욱 명백하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부인한 많은 종류의 사람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각종 이적들 이 모든 것에 관하여 세상의 철학이나 심리적인 다시 말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려 드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기독교의 탈을 쓴 종교 지도자들의 안에 있다면 우리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떨던 여인들, 비록 그들에게 처음에는 부활 신앙이 없었고 무서운 시체만을 생각하며 사망 권세를 떨쳐 버리지 못했지만 그들이 사명을 받았을 때에는 그들은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끝까지 부인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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