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하는 세대(마 23:15)

조회 수 2401 추천 수 0 2010.06.07 19:01:04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간의 종 생활을 마치고 홍해를 건너 처음으로 당도한 마을이 '마라'였습니다(출 15:22-26). 본래 마을의 이름이 마라가 아니라 그곳의 물이 너무 써서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쓰다'는 의미로 마라라 이름지었습니다.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이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물에 던지자 물이 달아졌습니다.

여기에서 물은 율법, 말씀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해석하려 든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괴로움일 것입니다. 말씀이 곧 '쓴 물'인 까닭에 아무나 마시려 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쓴 물을 단 물되게 하신 한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이 계시기 까닭에 오늘도 생명수를 마시고 충만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지(빌 2:5),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성도여야 합니다.

만들어지는 교인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너희가 개종자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만들면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기도생활과 성경공부, 봉사와 전도 활동 등을 토하여 훌륭한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경건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만들어지고 있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위의 말씀에 '만들면'이라는 말은 개역 성경에서 '생기면'이라는 말로 되어있는 구절입니다. 영어로 'made'라는 말을 썼고, 또한 '되게 하는도다'는 말도 'make'라는 말로 '만들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인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대판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들끓고 있는 이 시대에 나를 재 진단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두루 다니는 거짓 지도자

그들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은 어떤 수식어를 붙여서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사람들이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의 교회는 잘못되었지만 열심은 본받아야 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해도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율법을 지키고 가르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율법을 향한 이 열심히 하나님을 감동시키실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들은 만족했고 더욱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녔습니다. 마치 오늘의 교회를 보는 듯 합니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교회를 확장하고 온갖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도 수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은 현대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절대로 작은 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물론 많은 헌금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설교자가 마치 자기를 대상으로 설교하는 것 같아서 싫다는 겁니다. 말씀이 나와 상관이 없다면 무엇을 위해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미 현대판 서기관, 바리새인의 교육에 익숙해 있는 성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있는 서기관, 바리새인에게 중요한 것은 두루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역시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숫자 불리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는가? 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배나 지옥자식이 된 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이권과 안전을 위해서 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추종자들을 이용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고 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회중을 이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생각 없이 서기관, 바리새인에게 신뢰를 주었던 추종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서게 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묘한 거짓 지도자들 밑에서 지옥자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그들에 의해 각종 부정이 행해지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따르는 것이 진리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부정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마 7:13),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간자는 여호수아, 갈렙밖에 없었고, 엘리야 선지자 때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자는 7,000명밖에 없었습니다.

진리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켜져 왔습니다. 오늘날 성경이 거의 모든 가정에 비치되고 있지만 그 말씀을 지켜 가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거짓 대언자, 거짓 선생, 거짓 영, 거짓 진리에 농락 당하지 말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행 17:11)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임을 기억하십시오. 자칫 유혹에 넘어간다면 안 믿느니만 못한 배나 지옥 자식된 모습으로 유황불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최초의 이단 - 아담과 하와

"그런데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를 먹을 수 있으나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엄려하노라 하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니 여자가 본 즉 그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이므로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으니라 이에 두 사람의 눈이 열려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 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치마를 만들었더라"(창 3:1-7)

우리는 이단이라고 하면 흔히 일정한 교단, 교파, 교주를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큰 교단 안에 머물고 있는 많은 이단적인 교회가 있고, 또 실제로는 생명이 아닌 비 진리를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워낙 방대해서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을 현혹시키는 진짜 이단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단, 교파, 교주와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으로만 분별해 낼 수 있는 교회 안에 숨어 있는 이단적 요소들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이 요소들을 찾아 제거해야만 합니다.

어떻게 죄가 들어 왔는가?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하와)를 만드시고 이 땅에서 번성하도록 하셨을 때 사탄은 그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사탄은 많은 들짐승 중에 적당한 짐승을 찾았고, 뱀을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짐승으로 선택했습니다. 그 많은 짐승 중에 왜 하필 뱀일까요? 이는 영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로 뱀은 귀가 없습니다. 뱀이 매우 간교하고, 외관상 징그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좀더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며 색상 또한 아름답고, 특히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동물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뱀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귀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요한이 밧모 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일곱 교회를 향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11,17,29, 3:6,13,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설적으로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는 교회는 귀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외관상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철학과 지식으로 가득 차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과시하고, 사회적으로도 지명도 있는 유능한 사람들로 가득 찬 교회! 그러나 이 외관상 아름다운 교회가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지 못하다면 그곳은 이미 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만일 귀를 막아두고 뱀과 같이 귀 없는 채로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사단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뱀의 혀는 두 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는 이중적 성격, 혹은 이중적인 말, 즉 거짓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혀에 대하여 말하기를 배의 키, 불로 표현하면서 그의 인생이 혀에 의해서 좌우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약 3:1-8).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니 내 형제들아 이런 것들이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되느니라"(약 3:10)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고 말함으로서 사단의 접근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결국 작게 보이는 거짓말이 인류를 죄의 후손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거짓말의 가능성조차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중적 생활은 이미 일상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밖에서의 생활은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결국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뱀이 두 개의 혀를 가진 까닭에 사단의 사역을 대신했듯이 이중적인 삶과 거짓을 일삼는 성도는 결국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단의 조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 사두개인 등은 예수님 당시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준수한다는 자들이었지만, 간교한 헤롯의 정부에 아첨하고, 서민을 착복하며, 자신의 배만 채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공모하여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중적인 삶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주 위험합니다. 진리의 말씀 위에 삶을 온전히 가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앞치마를 걸치는 아담과 하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두 사람의 눈이 열려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 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치마를 만들었더라'(창 3:7)고 했습니다. 실제로 여기서 말하는 치마의 정확한 말은 '앞치마'(apron)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워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눈에 보이는 부분 외에는 가릴 수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뒷모습은 여전히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율법대로 살아보려는, 혹은 종교적으로 살아보려는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살아가려고 하고, 또한 살아가고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자들조차도 행위를 통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하지만 행위의 옷으로는 죄를 가리울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입니다(사 59:6).

고넬료가 제아무리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행 10:1,2). 베드로를 만나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구원이 그와 그의 가정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행 10:44-48). 행위가 구원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잎사귀와 같아서 바람에 날려버리는 존재와도 같습니다(사 64:6). 이제 행위의 옷을 벗어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옷으로 갈아입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시대에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려는 많은 거짓지도자들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가죽옷

하나님은 짐승을 희생시키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 짐승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가려도 가릴 수 없는 죄의 수치스러움을 하나님은 희생을 통하여 가려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죄는 완전히 가리움을 받았습니다(롬 4:7,8).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듯 이제 복음의 옷을 입히시고 천국 혼인 잔치에서 예복으로 삼으시고 계십니다. 만일 이 예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수족을 결박하여 던져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마 22:11-14).

가인을 낳은 하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적 그리스도를 말한다면 '내가 주께로부터 남자를 얻었다'고 말한 이브(하와)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창 4:1).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하와)가 범죄 한 이후에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처녀를 통해 오실 예수님께서 사단을 이기실 것에 대한 말씀이지만, 이브(하와)는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인이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했고, 이 사상을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는 각종 우상의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대표적으로 카톨릭의 마리아와 아기 예수 상). 결국 이 가인은 죄 된 조상의 대표가 되었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말씀을 경건하고 진지하게 듣는 자세도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끊임없이 성도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가장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접근하고, 그들을 죄의 구덩이에 밀어 넣고는 사라져 버립니다. 지금이야말로 깨어 근신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옳게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 가야 할 때입니다. 부디 주님 다시 오실 시기가 가까워진 이 시대에 사단의 종노릇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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