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병에 걸린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

조회 수 3035 추천 수 0 2010.09.03 15:00:54

예수님의 기적(24)마비병에 걸린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 (마8:5-13, 눅7:1-10)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그분께 나아와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주]여, 내 종이 마비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고통을 받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리라, 하시니 백부장이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온즉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며 내 아래에도 군사들이 있어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그가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그가 오며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그가 그것을 하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놀라사 따르던 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 앉으려니와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네 길로 가라. 네가 믿은 그대로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하시니 바로 그 시각에 그의 종이 나으니라. (마8:5~13)

 

이제 그분께서 백성이 듣는 데서 자신의 모든 말씀을 마치신 뒤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에게 사랑하는 종이 있었는데 그가 병들어 곧 죽게 되었더라.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유대인들의 장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그분께서 오셔서 자기 종을 고쳐 주실 것을 그분께 간청하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절박하게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그를 위해 이 일을 하시는 것이 그에게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시더라. 이제 그분께서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이 친구들을 그분께 보내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친히 수고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주께 나아갈 자격도 없는 줄로 생각하였사온즉 오직 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며 내 아래에도 군사들이 있어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그가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그가 오며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그가 그것을 하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들으시고 그로 인해 놀라사 주위를 돌아보시며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니라. 보내어진 자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앓고 있던 종이 온전하게 되었더라. (눅7:1~10)

 

로마의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교훈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에 속해 있었고, 백부장은 그들을 치리하기 위해서 파견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측면에서 보면 백부장은 권세를 가진 자였고, 예수님은 그가 다스리고 있는 나라의 한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예수님의 도움을 청했고, 더욱이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겸손함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랑하는 종이 마비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가 예수님께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은 그의 종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백부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매우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겸손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 당시에 매우 훌륭한 저택에서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로마시민으로서 1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의 집을 방문하시고자 말씀하셨을 때, 그는 “[주]여, 친히 수고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집이 누추하거나 접대할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이요, 감히 예수님 앞에서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자신이 더욱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은혜를 구하는 것 조차도 부끄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내 자신이 주께 나아갈 자격도 없는 줄로 생각하였사온즉 오직 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과연 그는 예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었을까요? 그는 육신적으로는 충분히 나아갈 자격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입으로 자격이 없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때, 육신적은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먼저 사랑하는 자신의 종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병들어 누워있는 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보면서 그의 마음 안에는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이 그 안에서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시공간을 초월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성경의 많은 곳으로부터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던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을 단순히 병을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그 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장면은 성경의 여러 곳들로부터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령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함으로 배 두 척에 고기를 가득 채우는 장면이라든가(눅5:1-11),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말씀대로 순종했을 대 물이 포도즙으로 변하는 장면(요2:1-10)들은 대표적인 장면들입니다. 이 세상이 말씀으로 채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해야만 합니다(요1:1-5). 백부장의 고백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백부장의 고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직접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도 될 만큼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히 예수님께 나와 간청을 했습니다. 이것은 믿음 안에 사는 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주님께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마음으로 믿으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기도도 필요 없고, 우리의 삶도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가진 자들은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입술을 열어 기도해야 하고,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문제를 말했고, 또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갔을 때 자신의 모든 문제, 즉 사랑하는 종의 병이 낳았습니다. 그는 매우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부장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누구에게도 없었던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칭찬을 듣는 것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러한 칭찬을 듣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단 예수님 당시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칭찬을 듣는 자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주여 주여”를 외쳐댑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믿는 자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이 문제들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경고하신 바가 있습니다(마7:21-23).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았지만 믿는 자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며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막상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났고, 오직 요한을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만 남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도구로 사용하려 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들은 결국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백부장으로부터 겸손과 사랑, 그리고 칭찬을 듣는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형제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서로가 경쟁을 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그 까닭에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남의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범위가 상상을 뛰어 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사랑한 종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합니다. 백부장는 사랑하는 종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자존심과 명예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예수님 앞에 와서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최고의 칭찬이 되었지만 보통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그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랑의 모습들에 대하여 다양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를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약5:14), 주인이 종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할 것을 가르치고(엡6:5),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형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확신(엡4:25)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디 백부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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