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르심을 입으라

조회 수 2983 추천 수 0 2010.06.09 11:38:0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 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중에 알지 못하고 그렇게 행하였기 때문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그러나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이후에 자신을 믿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셨으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긍휼을 얻었느니라 이제 영원하신 왕 곧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디모데전서1:12-17)

 

어떤 사람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역의 기회가 주어지는가?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질서를 필요로 하며, 그 질서에 따라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복음전도자로서 사역을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야고보나 디모데와 같이 목회자로서 일을 하는 자들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교회 내에서 주님의 종으로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임이 분명하며, 그것은 결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복음이 깨달아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날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특별한 사역자가 된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교회 내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이 없이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사람을 모으려 할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게 될 것이고, 성도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더욱 힘쓸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권면을 통하여 주님의 일을 맡은 자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입고,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르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1. 바울에게 맡겨진 사역

 

많은 이들은 사역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향합니다. 물론 신학교는 사역자가 되게 하는데 많은 기술적인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전한 곳에서는 성경을 보는 눈과 교회를 질서 있게 운영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의 교단에 속한 목회자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교단 확장에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주님의 종이 아닌 교단의 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은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까?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서 사역을 맡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 이 말씀의 의미는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신학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아도, 또한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주님으로부터 사역이 맡겨지지 않은 것이라면 그는 결코 정상적인 사역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그는 결코 주님의 종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갈대아 우르를 나와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스스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자처했지만 40년이 지난 후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주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못했지만 주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습니다. 부르심은 철저하게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먼저 다가가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물을 깁고 있는 요한에게도 다가가서 제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세금을 거두고 있는 마태에게 다가가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님의 일꾼이 됨에 있어서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주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보여주는 사역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언제나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결코 자신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 바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믿는 댓가가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힘을 얻어 증거 했습니다(행9:22,딤후4:17).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일꾼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며(롬10:11), 담대하게 증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빌4:13). 그의 사역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스스로의 지식이나, 명예 권세를 사용하려고 했다면 그의 사역은 결코 주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능력 있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고후4:1).

 

2. 핍박자였던 바울

 

우리는 사역자가 되기 전 바울의 상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역자의 기준에 대하여 많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사역자가 되기 위한 인격과 자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하여 말함으로서 사역자의 기준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바울의 많은 학문과 재능, 그리고 그의 환경이 주님이 쓰시기에 매우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것들을 모두 배설물(dung)로 여겼다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의 배경이 쓰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조건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전혀 부르심을 입을만한 조건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딤전1:13,행8:3,고전15:9). 왜 그럴까요? 그것도 주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이들도 그들의 환경이 결코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과 같은 이들도 결코 뛰어난 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모세는 지혜로운 자였으나 그가 부르심을 입은 때는 광야에서 양들을 치고 있었을 때라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그의 형제들 중에서 가장 막내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된 때는 나그네 되었던 때 사울이 죽은 후였습니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주님이 부르신 것은 그들이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고전1:26-29). 만일 능력이 있거나 재력이 있는 자가 주님의 일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보다는 그러한 환경에 관심이 많을 것이며, 또한 그러한 것들이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통해 일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약하고 미련해도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모든 일들을 주님의 통하여 하고자 하는 이들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3. 구원의 대상

 

복음을 전하는 자가 누구를 전도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물론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사실상 해답의 절반만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죄인들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딤전1:15). 그것은 사실상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스스로 고백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롬4:25).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예수님은 그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의로워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 의로운 자입니까? 세상에 의로운 자는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결과는 지옥으로 향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의로운 자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9:13).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누구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바로 죄인입니다. 그들이 바로 주님의 은혜를 입을 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의로운 자라고 일컬음을 받을 자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누구에게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혹시 복음이 없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세상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배부른 자에게 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사역자는 그들에 대하여 동정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겸손히 주님께 나아오는 자가 의롭다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역자가 혼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4. 본이 되는 삶

 

주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딤전1:16,엡4:29,). 아무리 훌륭하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정작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지 않는다면 그의 가르침은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와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훌륭한 설교자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본을 보이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오늘날의 교회를 능력 없는 교회로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말들은 모든 종교들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전4:16)

 

바울이 이르되, 각하뿐 아니라 이 날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결박당한 것을 빼고는 거의 나와 같이 되고 전적으로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행26:29)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모습이 마치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자신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말이 아닌 삶으로서 성도들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어떠한 가르침보다도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바울의 심정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라면 당연히 삶으로서 성도들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입술로만 가르치고 성도들을 인도하고자 한다면 그는 삯군 목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특히 주님의 일을 맡은 사역자가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명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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