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우정

조회 수 3743 추천 수 0 2010.06.05 21:29:17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혼이 다윗의 혼과 밀착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혼같이 사랑하니라. 그 날에 사울이 다윗을 데리고 가서 다시는 그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이때에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혼같이 사랑하였으므로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또 자기 옷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사무엘상18:1-4)

우리는 성경 안에서 뜨거운 우정을 나누었던 대표적인 인물로 다윗과 요나단을 말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친구가 되기에는 많은 한계를 가졌던 자들입니다. 요나단이 왕의 아들, 즉 왕자로서 차기 후계자인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서로 경쟁 상대가 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이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소년이었을 때 요나단은 이미 군대를 통솔했던 장관의 위치에 있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본다면 둘의 사이는 가족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딸인 미갈이 다윗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요나단에게 있어서 처남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친구라기보다는 가족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관계를 우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우정의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장차 왕이 될 자이며, 결국 사울의 자리에 앉게 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준비하셨고, 다윗은 이 싸움을 훌륭하게 승리하였습니다. 이 싸움이 있은 후에 다윗은 사울의 궁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첫 만남이 이루어 집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혼이 다윗의 혼과 밀착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혼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첫 눈에 반했다”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 다윗과 요나단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되어 하나가 되어있었습니다. 특히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혼같이 사랑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혼같이 사랑하였으므로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맺었으며(삼상18:3)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하여금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사랑하는 것같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더라(삼상 20:17)

처음에 이 우정이 요나단에 의해 형성되어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나이가 다윗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경험도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나단은 적극적으로 다윗에게 언약을 맺고, 또한 다시 맹세하게 함으로서 다윗에 대한 사랑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나단의 행동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요나단의 목숨을 건 우정

우리는 이 둘 사이의 우정이 주로 요나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그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요나단은 오히려 다윗을 변호하며, 그를 돕습니다. 그가 다윗을 돕는 것은 단순히 다윗을 사랑해서만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을 의식하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을 통해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요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을 돕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인간적으로도 매우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었음에 분명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중심은 다윗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 안에서 아름다운 우정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우정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좋게 이르되, 원하건대 왕께서는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범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들은 매우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무릅쓰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으며 또한 [주]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것을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아무 이유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하니 사울이 요나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맹세하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다윗을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전과 마찬가지로 사울의 눈앞에 있으니라(삼상19:4-7)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에서 오히려 친구를 변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친구를 변호하는 것은 단순히 친구가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그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더욱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그는 아버지를 이해시키려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정당한 것에 대하여 바르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있어서 바로 그러한 친구였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그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내일 아무 때나 혹은 셋째 날에 내 아버지를 자세히 살필 때에, 보소서, 다윗을 위하여 선한 일이 있는데 내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알게 하지 아니하면 [주]께서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가 너를 해하는 것을 기뻐하거든 내가 그것을 네게 알게 하고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리라. [주]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것같이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의 친절을 내게 베풀어 나로 하여금 죽지 아니하게 할 뿐 아니라 [주]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지면에서 모두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내 집에서 네 친절을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와 같이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을 맺고 이르되, [주]께서 다윗의 원수들의 손에서도 이 언약을 요구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하여금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사랑하는 것같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더라(삼상20:11-17)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한 요나단은 다윗과의 사이에서 맹세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축복합니다. 그에게 영원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위로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씨와 네 씨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이에 다윗은 일어나서 떠나고 요나단은 도시로 들어오니라(삼상20:42)

다윗과 요나단은 헤어집니다. 그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상황을 예고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께서 영원히 그들과의 사이에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손까지도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그들 자신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숲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하나님 안에서 그의 손을 강하게 하였으니 곧 요나단이 그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너를 찾지 못할 것임이라.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되리니 이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아시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주] 앞에서 언약을 맺고 다윗은 숲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상23:16-18)

이제 그들은 마지막 작별을 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결코 좋은 환경에서 쌓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매우 의미 있는 말을 던집니다. 그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 다음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나단의 고백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사울에 이어 왕이 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을 통해 발견한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인 사울로부터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들을 보고 있었으며, 결국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요나단이 다윗을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현재는 아버지인 사울이 왕으로 있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자신은 다윗의 다음이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아버지 사울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고백했지만 사울은 인정할 수 없어서 다윗을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바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이 진정한 우정은 없습니다. 요나단은 이미 다윗의 아래에서 복종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현재의 위치가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오히려 낮아지고자 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는데서 아름다움이 잇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우정을 기억하고 그를 노래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내 형제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로 인하여 슬퍼함은 그대가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놀라워서 여인들의 사랑을 능가하였도다(삼하1:26)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이 그에게 있어서 심히 아름답다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그의 사랑이 여인들의 사랑을 능가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만나는 시간동안 다윗은 어떠한 사랑도 보여준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요나단의 짝사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요나단이 죽었을 때에 슬퍼하면서 그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정은 나누는 것이지만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일방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록 내가 사랑을 받지 않고 있을 수는 있어도 상대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우정이 잇을 수 있습니다. 서로가 주고 받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우정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요나단의 사람이 죽은 이후에나 보상을 받을 수 잇었다는 점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나누는 우정이 죽은 이후에나 결실을 보게 될 수도 잇다는 점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다윗의 보상

다윗과 요나단이 우정을 쌓아가는 동안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에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도망을 다니는 신세였고,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요나단의 우정은 진정으로 값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요나단은 죽었고, 다윗은 요나단과의 맹세를 지키고, 또한 그 사랑을 보답해야만 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를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더니 전에 예스르엘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소식이 왔을 때에 그가 다섯 살이었더라. 그의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할 때에 급히 도망하였으므로 그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더니 그의 이름은 므비보셋이더라(삼하4:4)

요나단에게는 다리를 저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두 다리를 모두 쓸 수 없는 므비보셋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사울의 집안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집 안이 몰락을 하게 되면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왕의 손자였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오늘날 죄 가운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비록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결국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신세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를 찾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인하여 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9:1)

이미 다윗은 사울의 집 안에 남아 있는 자를 찾습니다. 비록 다윗과는 원수와 같이 대적하며 살았던 사이였지만 요나단으로 인하여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의 신분 자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죽음으로부터 건지시기 위해 절망의 상태에 있는 죄인들을 찾으십니다.

왕이 사울의 종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모든 것을 내가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나니 그러므로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열매를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먹을 음식이 있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빵을 먹으리라, 하니라. 이제 시바에게는 아들 열다섯 명이 있고 또 종 스무 명이 있더라(삼하9:9-10)

다윗은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자신의 상에 앉게 합니다. 우리는 그의 배려가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들과 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먹게 했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두 발을 절었습니다. 이 말은 곧 그가 거동할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상에 같이 앉음으로 그의 두 다리를 가렸을 뿐만 아니라 왕의 권위 아래 있음으로 인하여 함부로 그를 대할 수 없도록 그의 자리를 확고히 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비교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본래 영적 불구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은 주님의 자리에 앉히심으로 인하여 능력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들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 있는 동안 가장 안전한 자리에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이 계속해서 왕의 상에서 먹었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었더라(삼하9:13)

므비보셋은 계속해서 다윗의 상에서 먹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안전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요나단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 므비보셋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영원히 요나단과의 우정을 지킬 것이며, 그 동안에 므비보셋은 다윗의 보호 속에서 안전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을 결코 바꾸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의 구원이 결코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구원의 안전함 속에서 마음껏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의 친구가 되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마11:19,눅7:34). 그리고 죄인들을 향해 친히 친구라고 고백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마26:50,눅12:4). 죽은 나사로에게도 친구라고 고백하고 계시며(요11:11),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님 자신이 친구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요15:15). 우리는 이처럼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과의 관계가 친구로서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로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누가 주님의 친구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친구는 서로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관계입니다(요15:13).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에 대한 보상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요나단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선을 행한 것과 같이 우리 또한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인이 하는 것을 종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5)

주님은 우리가 종으로서의 삶을 살기 보다는 친구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의 교재를 통하여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아닌 더욱 아름다운 교재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보다 인격적으로 주님과의 대화를 하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4:4)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와 가까운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5. 결론

요나단을 생각해서 비록 원수의 자손이었지만 므비보셋에게 선을 베푸는 다윗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정한 친구는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은혜를 결코 잊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겸손함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충분히 존중해 주고 그 사랑을 간직해 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힘겨운 환경 속에서 더욱 빛이 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게 되었던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진정 우리의 삶에 힘겹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 낼 수 잇는 지혜로움과 인내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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