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조회 수 4136 추천 수 0 2010.06.05 21:03:21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관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군대를 두루 지나가며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이는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르단 강을 건너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소유로 주시는 땅을 소유하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수1:10~11)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지파 눈의 아들로서 본명은 호세아입니다(민13:8). 그는 일반적으로 모세의 그늘에 가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모세의 후계자 정도로 여겨지는 인물이지만 사실은 그가 여호수아=호세아=예수라는 이름이 모두 구원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의 생애를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며,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먼저 순종하는 삶의 모범이 되었던 자입니다. 성경은 그가 모세를 섬기는 자로 묘사되어 있으며, 성막 밖으로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곁에서 머물러 있었던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33:11). 이러한 그의 모습은 결국 모세 자신 분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에는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을 받고 제사장 엘르아살의 입회 아래 모세의 손에 의해 안수를 받음으로 그의 사역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민27:18~23). 그는 결코 모세를 앞서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나선적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는 명령에 대하여 복종하였고, 최선을 다하여 섬겼던 것입니다. 그가 지도자로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함을 주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신실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가장 주목 할 만한 점은 역시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각 지파의 대표 한 사람씩 선발하여 정탐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로 떠났습니다.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다른 열 지파의 대표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노라고 보고하지만 갈렙과 더불어 여호수아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틀림없다고 보고했습니다(민13:1-14:32). 그는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본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고, 그는 갈렙과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도록 그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신31:23). 모세라는 인물에 비해 자신은 후계자로서 초라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일들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는 먼저 정탐꾼을 보내고(수2:1), 믿음의 발을 옮겼습니다.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들은 물위로 발을 내딛었고, 그들이 한걸음씩 밟는 순간마다 강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믿음의 실행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행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약2:17).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또한 전혀 관계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여호수아와 같이 믿음의 발걸음을 걸어갈 수 잇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무너뜨린 성은 여리고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구원받은 한 여자의 가족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라합입니다. 그녀는 창녀였지만 이전에 방문했던 정탐꾼들과 구원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결국 약속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수3:11-17, 5:10-15, 6:20-27). 여호수아는 이 믿음의 여인으로 하여금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그녀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배려는 단순히 목숨을 살려주는 차원의 것이 아닌 사람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또한 믿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보는 것과 같이 신실한 지도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직한 양심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항상 부드럽고 온유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이성으로 진격하는 중 참패를 당한 후에 그 원인이 아간이라는 자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아골 골짜기에 돌로 쳐 죽이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수7:4-29). 그는 모든 문제에서 부드러운 자였지만 죄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이토록 죄에 대하여 단호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도 역시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릴 줄 아는 자만이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말년에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자신의 몫을 감사함으로 받고 평범한 생애를 추구했던 자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하여 도피성을 만들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성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수19: 수20:,24:1,14,19,20,행7:45). 그의 유언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기도록 함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아갈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벽한 생애를 보낸 것만은 아닙니다. 그의 실수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멸할 것을 지시했지만 기브온 거민들과 언약을 맺고 살려둠으로서 결국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와 끝없는 갈등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훗날 복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갈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세와는 달리 후계자를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후계자가 주님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능 이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결국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지도자의 부재로 인하여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방향을 앓고 헤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우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누구나 최고가자 되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욕심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실하며,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욕심이나, 노력을 가지고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보는 바와 같이 하루하루 삶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사는 생애가 지속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사용하고자 하실 것입니다. 부디 믿음의 사람으로서 성공적인 생애를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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