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에서의 만남(창32:1-33:20)

조회 수 3998 추천 수 0 2010.06.06 22:45:06

야곱이 홀로 남았는데 어떤 남자가 날이 새도록 그와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에 손을 대매 야곱의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이 그와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내가 가게 하라, 하매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당신을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야곱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거늘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니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견주어 사람들과 견줄 능력이 있어 이겼기 때문이니라.(창32:24-28)

 

야곱과 에서의 만남은 단순히 형제가 오랜 시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지 못해서 그리워하다가 만나는 장면과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원수와 같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고, 에서는 야곱이 돌아오면 반드시 죽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야곱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심히 두렵고 고민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32:7,8). 지금 야곱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고비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라반의 집으로부터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야 하는 곳은 그를 죽이려 하는 형 에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느 곳이든 그가 정착할 곳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절박한 심정이 바로 그의 기도와 종들과 가족들을 따로 보내려고 시도하는 많은 장면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곤경에 처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이일들을 극복해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야곱의 자리에 서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과연 고향으로 가야만 했는가?

 

사실 야곱이 돌아가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는 그곳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향으로 가야만 했던 이유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의 기도를 통하여 "내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전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고향 네 친족에게 돌아가라. 내가 너를 선하게 대하리라, 하셨나이다."(32:9)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고향을 가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러한 명령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도 돌아갈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야곱에게 있어서 이 명령은 가혹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마음이 심약한 야곱에게 목숨을 건 이 행동에 대하여 너무도 과중한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되었든 야곱이 에서와 화해하고 후에 부담이 없이 한 민족의 족장으로서 서기를 기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형님인 에서와 화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된다면 아마도 야곱과 그의 후손들은 명분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후손을 위하여 이일들을 계획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만 모든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명령이 비록 야곱을 위해 주어졌다고는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을 순종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지금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님의 명령은 때로 가혹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모든 물질을 잃게 되거나 지금까지 지속해왔던 관습들과 당연시 행해왔던 일들에 대하여 금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최상의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기도

 

위기의 상황에서 최상의 무기는 무엇인가? 야곱은 형님인 에서에게 가는데 있어서 어떠한 방법도 쓸 수 없었습니다. 에서는 분명히 야곱보다 모든 것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고, 또한 심성 또한 강해서 야곱은 그와 싸울 수 있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야곱은 에서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이 형보다 열등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형보다 강한 것을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형보다 강한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주님께 의지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연약하오니 나를 도와주세요!"라는 방법으로 기도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철저히 전에 주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주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정직하고, 또한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기도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함에 있어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주님이 도와주실 것을 구합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기초적인 기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언제나 성경, 즉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많은 부분에 걸쳐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모셔 들이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되었고, 또한 자녀에게는 장차 상속이 주어지게 될 것이며, 이 땅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우리의 행위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된다면 주님은 틀림없이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바로 주님이 자신에게 친히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는 야곱

 

야곱이 에서와 화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단순히 기도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축들과 종들, 즉 자신의 가진 재산을 나누어 형에게 화해의 예물로 보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화해하는 일을 위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곱은 머지않아 다시 한 푼의 재산도 없이 처자들과 같이 광야를 유랑하고 다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의 관심은 오직 형님인 에서와의 화해를 하는데 있습니다.

 

화해의 노력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신약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을 향해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여길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은 복음의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치게 된다면 그것은 반쪽밖에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원리는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장차 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누가 뭐래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에서는 원수와도 같은 관계였지만 그는 화해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들을 투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서로가 화해하기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만 하겠습니다.

 

야곱의 씨름

 

야곱은 종들과 가축들을 형에게 보내고 홀로 남았습니다. 그 때에 그는 어떤 남자와 더불어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물론 이 남자는 야곱이 스스로 고백했듯이 하나님이었습니다(32:30). 그는 이 싸움을 통해 절박한 자신의 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이 위골(違骨) 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굳이 형에게 갈 만한 이유가 없는 자였습니다. 그가 그곳으로 가려는 이유는 오직 주님께서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그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하여 이토록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그것은 에서와의 화해입니다.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그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후에 에서가 야곱을 잘 돌봐준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후에 많은 재물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화해하는 일들을 위해서 그는 이 치열한 싸움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관점에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화해는 주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가장 기본적인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화평을 주기 위해 오신 분이시기도 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역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 싸움에서 자신의 몸이 절름발이가 되는 아픔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의 육체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손상을 입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육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전부를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평생을 절름발이가 되어 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건강한 몸으로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아내와 자식을 얻었고, 많은 가축도 소유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건강한 몸을 가지고 일을 할 수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스스로는 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싸움을 승리함으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 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감사한 것은 바로 "내가 얼굴을 마주 대하여 하나님을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된 것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사실과 하나님을 대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비록 그의 처지는 가장 불행한 사람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화해함

 

드디어 야곱이 에서를 만납니다. 그는 만나는 과정에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뒤에 두고 자신이 먼저 앞 서 나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고 부둥켜안고 목을 껴안으며 그와 입을 맞추고 함께 우는 것이었습니다(33:4). 이것은 야곱에게 있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후에 아내와 자식들이 차례로 절하고 모든 것이 화해가 되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와 치열한 싸움이 결국 에서의 마음을 움직였고, 둘은 화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야곱이 에서에게 화해 허물을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형제간에 무슨 재물이 필요하겠느냐며 "네 소유는 네가 가지라."(33:9)고 말을 하지만 야곱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은혜로 대하셨고 내가 충분히 가지고 있사오니 원하건대 형에게 가져온 나의 복된 선물을 받으소서"(33:11)라고 말하지 에서는 결국 그의 예물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화해헌물은 야곱의 믿음이 담겨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화해 헌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구약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율법을 정하심에 있어서도 바로 이 헌물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화해를 위하여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가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화해 헌물이십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더불어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야곱이 에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예물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주님께 보이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화해를 하는 데는 반드시 값이 지불되어야만 합니다.

 

결론

 

야곱은 에서와의 화해를 위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형에게 가는 것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또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고, 심지어 자신의 몸이 절름발이가 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형과의 화해를 하는데 성공을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보이기 위해 화해를 위한 예물을 형에게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육신적으로는 연약한 자였지만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믿음을 보인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야곱의 생애를 통하여 더욱 위대한 믿음의 생애를 설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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