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의 뒤에서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6)
롯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특히 그녀가 구원을 받았는가? 아니면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던져졌는가? 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는 주님께서 한 번 구원한 사람은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그녀가 소돔성을 빠져 나왔다는 사실만을 두고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게도 그녀는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으면 성경의 증거들을 통해서도 그녀가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소돔성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비록 성을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저주의 땅(신29:22,23)을 벗어나지 못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한 땅은 소돔과 고모라뿐만이 아니라 아드마와 스보임의 온 땅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녀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들은 이미 천사들의 경고와 같이 그녀가 있어서는 안 될 심판의 장소였습니다(창19:17). 그녀는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곳을 나와야만 했으며,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그녀는 믿음의 환경 가운데 있었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심판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는 결코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28,29).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거듭나지 못했으면서도 거듭난 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롯의 아내와 같이 심판의 때에 멸망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환경 가운데 있지만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보다 비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나온 여인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나와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을 때 롯의 아내는 함께 나왔습니다. 그녀의 두 딸이 소돔성에서 이미 결혼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녀는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시아버지와 같이 여기고 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녀는 롯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무척 따랐을 것이며, 그의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그의 남편과 더불어 고향과 친척을 떠났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분명히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연히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목격했을 것이며, 심지어 자신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겼을 때 아브라함이 그의 군사들을 이끌고 다시 찾아 주었을 때 그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창14:1-16). 그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들었을 것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시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복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로서 그들과 함께 행동을 했고, 살았으며, 또한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환경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녀는 분명히 훌륭한 믿음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인을 남편으로 둔 여인
그녀에게 있어서 더욱 행복한 일은 남편이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롯에 대하여 분명히 의로운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후2:7).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친척을 두고 떠나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남편이 비록 처음부터 선택함을 입은 자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자였습니다. 그 까닭에 심판을 면할 수도 있었으며, 또한 의로운 자라는 호칭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분명히 남편으로부터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관하여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복 주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굳게 믿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가정은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 분명히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가정의 속한 한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의 가정으로 일컬어지는 가정은 많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를 소망하고 있으며,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경건의 훈련을 하며 모범적인 신앙의 가정으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들 가운데 롯의 아내와 같은 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결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받은 여인
천사들은 소돔성의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멸망을 피할 몇 가지 주의 사항들을 일러줍니다. 가령 뒤를 돌아보지 말라, 들에 머무르지 말라, 산으로 도망하라(17)는 등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롯을 향하여 전해진 것이지만 온 식구가 이 사실에 대하여 모를 리가 없습니다. 롯의 아내 역시 이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피해서 그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었다고 그녀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니 그녀가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고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녀를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녀는 말씀보다는 세상이 더 관심의 대상이었고, 결국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갔던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녀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눅9:62). 그것은 주님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귀한 말씀들이 들려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자 하면 어디서든 들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라디오, TV, 서적, 잡지 등을 통하여 원하는 말씀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말씀들이 들려진다 할지라도 그들이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교회에 나와 훌륭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구원이 보장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훌륭한 교사에서 성경을 배웠다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구원을 보장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그녀는 분명히 심판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듣고 알고 있었지만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판을 목격했던 여인
그녀의 앞에서 소돔이 불바다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터전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그녀의 모든 재산과 노력들이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씀이 현실이 되어 가는 이 상황에서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장차 그녀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상속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이 세상에서 무너져 가는 삶의 터전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말씀에 대하여 불순종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자살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절망의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죽음의 길을 택한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롯의 아내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자로 가룟 유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촉망받는 젊은이였고, 또한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장차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면 분명히 중요한 일을 맡아 나라의 일을 관리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자신의 잘 못을 깨닫고 돈을 돌려주려 했지만 거부를 당하고 심한 자책감으로 인하여 결국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행1:15-19). 결국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전형적인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그는 비록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인물이었지만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여(마26:69-75) 주님께로 돌아와 초대교회를 세워 가는데 놀랍게 쓰임 받았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구원받을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은 두 가지의 반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또 하나는 오직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들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장차 다가올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들이라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를 온전한 구원의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자녀양육에 관심이 없었던 여인
롯이 소돔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이후에 그녀의 딸들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은 사건은 매우 충격적인 것입니다. 더구나 롯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의 두 딸들에 의해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은 결코 그녀들의 어머니인 롯의 아내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녀의 두 딸들은 소돔 성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심각한 도덕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롯의 아내가 세상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사실상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롯은 천사들을 대신해서 그의 두 딸을 사람들에게 정욕거리로 삼아도 괜찮다고 허락을 했기 때문입니다(창19:8). 이러한 도덕성의 붕괴는 롯과 그의 아내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의 어머니의 품성을 닮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롯의 아내의 두 딸을 통해서 그녀의 품성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세상을 사랑했던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녀들조차도 자신들의 정욕을 위하여 양육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자녀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천사의 손에 이끌려 나온 여인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손에 의해 이끌려 나왔습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그러한 방법으로 소돔 성으로부터 끌려 나왔습니다. 그녀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은혜였습니다. 그녀는 주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또한 구원을 받을 만한 어떠한 자격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사람의 행위와 상관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엡2:8,9).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의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러보겠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그것들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들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할 뿐이며,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핍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끌고 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감사함으로 손을 잡고 가지만 더욱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세상으로 향해 갑니다. 그들은 결국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 미련을 둔 여인
결국 롯의 아내는 세상에 미련을 두고 멸망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다가올 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삶에 모든 부리를 두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멸망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멸망의 현장을 보고 있으면서도 설마 하며, 주님의 말씀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어 장차 멸망당한 사람들의 모형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살아간다면 롯의 아내와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염두 해둔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롯의 아내는 믿음의 가정에 속해 있었던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믿음의 환경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그녀의 생애는 오늘날 좋은 믿음의 환경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의 가정이라고 구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좋은 교회, 좋은 목회자, 성도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눈다 할지라도 구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많은 성경 지식과 헌신, 구제를 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구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주님의 은혜(선물)가 크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서 당신을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십시오.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당신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멸망이 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과 분리되어 사십시오. 결코 미련을 가지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결국 멸망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일 믿음의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히 구원의 안전함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눅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