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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구원(창19:1-22)

조회 수 1758 추천 수 0 2010.06.06 22:17:06

롯의 구원

(19:1-22)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

 

롯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그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며, 또한 의로운 자라고 여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구원받은 자로서 부끄러운 생애를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결코 그가 의로운 자라고 여김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생애를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롯은 의로운 자였습니다

 

롯이 의롭다는 사실에 대하여 매우 불쾌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본래부터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로부터 나올 때 동행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12:1). 그러나 자식처럼 사랑했던 아브라함의 배려와 아브라함을 따르고자 했던 롯의 의지가 함께 해서 결국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롯은 재산의 문제로 분쟁이 생겨 아브라함과 결별을 하게 되었고(13:5-13), 그가 살던 소돔이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종들을 모아 군대를 결성하여 그들을 건져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14:13-16). 그러나 우리는 구약 성경 안에서 비록 그가 의롭다는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명백하게 그를 향하여 의롭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벧후2:7)

 

성경은 명백하게 롯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의 편에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멸망의 땅을 선택했고 그곳에 머물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관심가운데 있는 자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성경 구절이 또 있습니다.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8)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롯은 소돔 사람들의 불법 행위를 보면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분명히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법에 대한 의로운 자의 자세는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믿음으로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3:24). 그들도 진정 의로운 자라면 죄에 대하여 괴로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죄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주변에는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죄를 짓지 않음으로 구원에 이르려 하는 사람들은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진정 거듭난 이후에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안전을 강조하는 자들이며, "봐라! 롯도 구원받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롯은 구원을 받았고 불법행위들로 인하여 괴로워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았습니까? 그 대답은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롯은 올바른 증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소돔 안에서의 롯은 분명히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자들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롯의 과제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소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지금까지 인도하심 하나님을 증거 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간청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롯이 머물고 있는 소돔에서 최소한 10명의 의인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10명만 있다면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18:32). 그러나 롯의 지금 형편을 보십시오. 그는 지금 소돔 사람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9)

 

롯은 분명히 소돔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롯을 이방인 취급을 하면서 롯에게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부분 소돔 사람들이 악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롯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그는 의로운 자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야 했습니다. 그가 증인이 되는데 있어서 얼마나 무능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주변 사람을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4)

 

사위는 자식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이 롯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구원과 관련하여 모범적인 가정인 노아의 식구들을 봅니다. 그는 끊임없이 전했고, 세상이 소돔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지만 그의 온 가족들은 노아의 말을 따라 방주를 만드는 일을 계속했던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의 반하여 롯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집안의 가장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권위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족의 책임입니까? 그것은 확신 있게 말씀을 드리지만 롯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가장으로서 올바로 처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지도 않았고, 또한 가족들로부터도 의로운 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 이외에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고전3:1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하여 감격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11:26). 우리의 가정에서는 어떻습니까? 존경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고 있으며, 또한 존경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롯의 망설임

 

롯은 왜 이토록 무능한 자로서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그가 천사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15) 소돔을 떠나기를 망설이고 있는 장면은 그가 처음부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소돔이 멸망할 것을 알면서도 그곳을 떠나기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는 결국 그의 아내와 두 딸들과 함께 천사들의 손에 의해 끌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16)

 

이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그는 지금 소돔을 떠나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롯은 본래부터 소돔을 사랑했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재산으로 인한 분쟁이 있었을 때 소돔을 택하여 장막을 쳤습니다(13:12). 그리고 그곳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14:12). 그는 이제 더 이상 나그네와 같이 사는 자가 아니라 완전히 정착하여 소돔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은 이제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의 꿈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곳을 떠나서는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롯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롯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되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할 줄도 알고, 또한 그 속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열심히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모두 불에 타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전혀 소망이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생활에서도 세상과 많은 타협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형적인 조건이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 외에도 명예, 권세, 지식, 철학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세상적인 기준으로 주님을 이해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것들을 취하여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분리되어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고후6:14). 그것은 우리의 보상을 모두 불태워버릴 것입니다. 심지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모두 빼앗아 갈 것입니다. 우리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처럼 어리석은 것들을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돔을 나오는데 필요한 주의사항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

 

(1)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9:62)고 주님은 경고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신앙은 곧 죄 사함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상태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난폭한 강도라 할지라도 현재 그가 그리스도인 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의 구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원의 복음은 접하고 깨닫기도 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영접치 아니하고 주님께로 돌이킴이 없다면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분명 천사들의 손에 이끌리어 멸망의 성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소돔과 고모라에 마음을 두고 있었고, 결국 뒤를 돌아본 결과로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이후의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아니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최상의 삶을 위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들에 머무르지 말라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착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한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서 넉넉하게 주실 수 있으신 분이지만 예수님과 제자들, 전도자들의 모습을 보아서는 부자로 넉넉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복(복을 비는)신앙을 추구함으로써 거짓 목자, 거짓 선생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당에 앉아서 기도하고, 십일조를 드림으로 복을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생활의 대부분을 교회 생활에 봉사함으로써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자 베드로는 이곳에 초막 셋을 짓고 생활하자는 제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고 세상에 내려가 사역을 계속합니다.

 

어느 곳이든지 머무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로서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절대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항상 길을 재촉하고 그의 최종의 목적지(천국)에 다다를 때까지 바쁘게 움직입니다. 머무른다고 하는 말은 게으름, 안일, 나태함으로 대표되는 말입니다.

 

롯의 가족에게 들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은 심판을 피해 길을 재촉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머무르려 한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함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세상에서 마냥 머물고 있다면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천국 시민 된 성도들은 부지런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3) 산으로 도망하라

 

성경에서 산은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시내산, 시온산, 갈멜산, 모리아산 등 대부분이 하나님이 임재하신 장소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명 돌판을 얻어 왔고,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불이 내려오는 시험을 하다가 하나님의 기적과 음성을 들었고,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드리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산이 하나님께서 임재 해 계신 구별된 장소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산에 오르셔서 가르치셨습니다(5:1, 24:3)

 

그래서 산은 세상과 구별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며, 말씀이 있는 곳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거짓 목자들에 의해 이 산이 잘못 오해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몇 해 전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소동이 났을 때 일부 사람들이 가정을 버리고 산에 올라가 집단 생활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산이며 모든 성도들은 이 산으로 모여야 합니다. 이 산으로 오르는 자만이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소알성으로 간 롯

 

롯이 소돔과 고모라로부터 나와서 산으로 가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작은 성(소알)으로 가겠다고 간청합니다. 산으로 가면 죽을 것 같고 성에 가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롯의 말에 사실은 그 성조차 멸망시키기로 작정된 성이었지만 멸망시키지 않고 롯이 안전하게 가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고 롯은 안전하게 피한 듯 했지만 그곳에서 두 딸과 함께 동침함으로 아이를 낳아 모압과 암몬의 조상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소알성이 이미 멸망시키기로 작정되었다는 말은 곧 죄악이 만연했던 성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롯이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작은 성이기 때문에 멸망을 면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청했고, 멸망을 면할 수 있었지만 근친상간의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고 -이는 소돔, 고모라성에 만연한 동성애보다 더욱 심한-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끊임없이 적대적 관계를 가진 민족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결국 작은 것을 소홀히 했던 롯은 더욱 큰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자식들을 낳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작은 죄들을 용납한다면 사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쓰러뜨리려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죄에 대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려는 자세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의 의지대로 하려는 롯과 같은 자세를 버리고 명령을 따라 산(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올라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은 계속 강조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롯의 생애가 작은 것을 소홀히 해서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 또한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김으로 복을 받는 일도 성경에 무수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롯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세상을 사랑한 자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만일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롯과 같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날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렇다면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많은 보상과 칭찬이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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