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웃음(창18:9-15)

조회 수 1779 추천 수 0 2010.06.06 22:14:53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18:9-15)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모범적인 여성으로 생각되고 있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매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었고, 결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그녀가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11:11).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하여 불순종의 사람이었던 사라

 

이 말이 다소 거부감 있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아들을 낳기 전까지 주님 앞에서 여전히 불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때로 그녀의 태도들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말씀에 대하여 속으로 비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그녀의 생각은 철저히 육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늙었고 내 주도 늙었은즉 내게 즐거움이 있으리요?"라고 말하며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터무니없는 말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인내하심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정말로 아이를 낳으리요, 하느냐?"고 크게 꾸짖으십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약속을 상기시키시면서 "주께서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한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라는 이미 앞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종이었던 하갈과 아브라함을 동침하게 함으로서 이스마엘을 낳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셨던 방법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주님의 약속을 거치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뒤에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도록 한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3:6). 이것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있어서 가장 가슴 아픈 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죄인이 되어 지옥으로 던져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이에도 동일한 과정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자기를 대신하여 아브라함의 침소에 들임으로서 결국 영원한 원수의 씨를 낳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16:1,2). 그것은 사라가 행했던 가장 뼈아픈 실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이후로 지금까지 그들은 원수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골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은 불순종 하나가 가져다주는 파장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사라도 역시 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후대에 씻지 못할 상처를 안기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결코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깨어 있어 근신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까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벧전4:7).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했던 사라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벧전3:6)

 

사라에 대한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결코 특별한 여자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평범한 "아주머니"라고 할 수 있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보통의 여자들처럼 시기할 줄도 알고, 또한 자신의 생각을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을 하기도 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관심 있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순종형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순종은 어찌 보면 미련할 정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육신의 안위를 위하여 사라를 자신의 누이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사실 누이동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은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쉽게 말해서 배다른 남매간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20:12). 그러나 그들은 남매간이기에 앞서서 부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결코 정당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말대로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사라와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라는 남편을 떠나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12:10-20), 또 한 번은 아비멜렉 왕에게(20:1-18) 갔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행동이 전혀 상식이 있는 여자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미련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였고, 결국에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아브라함의 상속자 이삭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어떠한 사람들을 쓰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당신이 지혜롭고 강하며 고귀한 자들을 쓰실 것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어떤 자들을 쓰실 것인지에 대하여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하여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소개되어진 사람들의 인간적인 약점은 전혀 기록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믿음을 의롭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전반적인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롯과 같은 자는 인간적으로 볼 때 전혀 본받을 만한 것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소돔 성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로운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벧후2:7). 그 외에도 기생이었던 라합, 자식들 앞에서 수치를 보였던 노아, 살인과 강간을 행했었던 다윗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약점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신약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허물이 제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약속된 자녀,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하여는 전혀 묻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사셀"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염소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제비 뽑아 광야로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16:8,10). 이것을 행했던 것은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하여 전혀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차 약속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10:17,18)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사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허물들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보시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를 원하시며,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약속을 받은 여인 사라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녀는 이미 약속을 받은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18:10).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안전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믿음의 상속자였던 이삭을 낳을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약속을 받은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평범한 여자로서 일생을 마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9:8,9)

 

약속을 받았다는 것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약속의 말씀을 받았느냐? 아니면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곧 천국(The kingdom of heaven)아니면 지옥(hell)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온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10:17). 그것은 단순히 들은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14). 그것은 곧 씨를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서 심어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만 그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씨앗을 보고 어떠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가져다주는 풍성함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겨지지 않는다면 결코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라를 통하여 씨가 그녀의 속에 심겨졌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를 당신 안에 심으십시오.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여인 사라

 

사라는 분명 평범하면서도 단순한 여자였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미련할 정도로 남편에게 순종했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약속의 자녀였던 이삭을 낳은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이제 보다 분명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전에는 자신의 몸종을 남편의 침소에 들일 정도로 적당한 타협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때의 사라가 아닙니다. 그녀는 결국 그녀의 몸종이었던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냅니다(21:10). 더 이상 불순종의 결과로 인하여 얻은 자녀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그녀의 결심이 작용을 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이 매우 지나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비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 앞에서 칭찬 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주님께서는 사라의 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21:12). 이것은 사라가 보여주었던 유일한 결단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매우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분명한 결단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보상태에 있을 때는 대부분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의 눈을 뜨게 된다면 분명히 분리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라가 하갈, 그리고 이스마엘과 더불어 살 수 없듯이 세상과 더불어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분리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격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분리된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 모두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고립되는 삶을 자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다면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세상과는 분리된 삶을 살면서도 아직 말씀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를 가진 자들입니다(10:15).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분리된 삶을 살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라는 분명히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11). 이것은 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얻어진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결코 우리가 유능하거나 지혜로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오직 그분의 말씀을 믿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당신의 구원은 안전하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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