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창12:4,5)

조회 수 2033 추천 수 0 2010.06.06 22:07:04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4,5)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12:4,5)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명령하시기를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오면서 원치 않는 불청객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매우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데에는 매우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데라와 롯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아버지 데라와 동행함

 

우리는 아브라함이 데라를 데리고 간 결과로 하란에서 오랜 기간 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와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주도하는 자는 아버지 데라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명령은 아브라함이 받았지만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을 데라였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11:31,32)

 

결국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을 때까지 하란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나오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하는 동안에는 여행을 이끄는 자가 아버지 데라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7:4)

 

결국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은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의 순종에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에 모시고 갔다는 사실을 매우 훌륭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그는 효자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편에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불순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기간 동안 그는 가나안으로 향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분리는 하나님의 뜻

 

우리는 성경의 많은 곳으로부터 분리에 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분리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결국 세상은 멸망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온 가족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제 곧 물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방주를 지어놓고도 여전히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도 멸망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을 당할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만일 천사들의 인도를 거부하고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모두 불에 타 죽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 가운데 롯의 사위들과 그의 아내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리됨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이집트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나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여전히 이집트 땅에 남아 있기를 원했다면 그들의 종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분리되어진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5-18)

 

이러한 사실은 구약시대에만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더욱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세상과 분리된 삶을 요구받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마음을 세상에 둔 상태에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완전한 분리만이 안전하게 이르도록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26:17,18)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하기 위해 부르심을 입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속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것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예수님은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면 그는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거나 자연인(The natural man)임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마귀를 그들의 아비로 여기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나라(Get thee from thy father's house)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행한 것은 결국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처럼 과거 우리의 아비였던 사탄으로부터 완전한 분리를 이루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를 온전한 믿음으로 이끌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육신에 속해 있을 때에 우리의 아비였던 사탄으로부터 완전한 분리가 없이 우리의 구원은 결코 보장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롯과의 동행

 

아브라함의 무리 중에 롯이 있었다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였으니까요. 롯이 여행을 주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들어가는데 큰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불순종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조카였지만 아브라함과 많은 갈등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의 재산 문제로 종들이 싸우자 결국 재산을 분배해야 하는 고육책을 써야만 했습니다(13:5-18).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하게 될 때 아브라함이 주님과 타협에 나서는 장면은 그의 처지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었습니다(18:23-33). 결국 아브라함은 롯과의 관계에서 적지 않은 아픔을 겪은 이후에야 그의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가 가나안에 이르러 육신적으로 좋은 것들을 모두 롯에게 주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가 곧 멸망을 당할 땅이라는 점을 들어 그 곳이 롯에게 주어지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지만 성경은 그 땅이 매우 좋은 땅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

 

아브라함은 롯을 데려감으로 당연히 그의 소유가 될 수 있었던 기름진 땅을 롯에게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주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는 롯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유익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롯과 갈라선 이후에 더욱 많은 땅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롯과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더욱 큰 선물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안겨 주셨던 것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3:14,15)

 

결국 롯과의 결별은 아브람에게 많은 선물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브라함과 같이 있을 동안에는 가시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롯은 결국 아브라함의 복을 가로막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아브라함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의 타협이 주는 결과

 

우리는 많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세상과 타협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또한 그들이 거듭났다고 말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애를 누리고 살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 안에서 복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에 이르듯이 복음을 듣고 깨달아 회개하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육신의 가장 좋은 것들을 잃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 건강, 명예, 권세 등 많은 모양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것들을 자신의 믿음 안에 포함시킨 자들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이룬 채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한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갈라내야만 합니다. 그것은 결국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으로 인도 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는 순간 육신의 것들을 모두 잃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뿐만이 아니라 교회들도 적당한 타협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의 문화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서 교회가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기독교 대중음악(CCM), 각종 이교문화와 축제들(성탄절, 부활절, 사순절), 그리고 이교도들의 의식과 전통들(주문식의 기도문, 성직계급, 축도)과 같은 것들은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노라고 말합니다. 죄 사함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하여도 말합니다.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과의 타협을 통하여 더욱 많은 혼들을 구원해 보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일에 거침이 되고 말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과 동화되어 적당한 타협을 이루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데라와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가 나중에는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와 함께 간 그들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모양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 답은 분명합니다. 세상과 분명하게 분리된 삶을 살며, 결코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지혜로움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더욱 풍성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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