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사냥꾼 니므롯(창10:6-14)

조회 수 5519 추천 수 0 2010.06.06 22:04:16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니므롯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보수적인 일부 교회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적하고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이미 많은 교회들이 그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니므롯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날의 교회가 어떻게 배도하고 있는가를 보기 위함입니다. 그는 역사상 배도를 주도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사냥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9)

 

홍수가 지나간 세상은 이미 황폐되어진 세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매우 척박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1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지만 그 이후에는 약 200년 전후로 그 수명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바로 자연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자연 과학자들은 대기를 감싸고 있었던 수증기 층이 홍수 이전의 사람들을 온화하고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홍수 때에 이 수증기가 파괴되어짐으로 인하여 결국 지금의 얇은 수증기 층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 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오래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사람의 수명이 점차 줄어가는 것은 자연의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자연의 파괴현상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었을 것이고, 약육강식의 세계를 형성했을 것입니다. 이 때 이후로 사람들도 동물들로부터 위협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냥꾼이 나타나는 것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이 짐승을 잡아 식용으로 사용한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있어왔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니므롯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a mighty hunter before the LORD)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니므롯이 하나님의 관심 속에서 사냥꾼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특별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눈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조차도 특별한 사람으로 분류되어질 만큼 특별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특별한 사람이 나타나면 니므롯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물로 분류가 될 만큼 오늘날로 말하면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그의 영웅 됨이 아니라 그가 이러한 영웅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을 끌만한 일을 행하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소위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과 대적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같은 이들도 분명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은 경우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의 왕국

 

니므롯은 분명히 현대 문명을 창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최초로 집단 지도체제를 이루었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의 왕국의 시작"(the beginning of his kingdom)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초로 왕이 되었던 자였습니다. 이미 앞서 "유발"이라는 자가 장막을 지음으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소개한 바가 있지만 그는 스스로 왕이 되어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통치의 개념에서 이해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았고,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그는 왕의 자리를 뛰어넘어 신의 존재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가 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역사적 자료를 통하여 이미 증명이 되고 있는 것이며, 또한 후대에 모든 종교의 기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크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니므롯은 태양숭배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달신, 그리고 그의 아들 담무즈(8:14) 는 태양의 화신, 즉 니므롯이 환생하여 태어난 아이라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러한 종교의 구성은 세계 모든 종교를 장악해 갔고, 각기 나라와 민족별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전해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는 통치를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과 종교의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결코 정치와의 연합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주님의 교회" 혹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교회의 통치가 주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종교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들조차도 정부와 연합하여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게는 교회 정치를 통하여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 하는 것도 오늘의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세상 권세의 시녀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려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교회" 그 위에 어떤 상위 기관도 두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통치하실 뿐이며, 또한 그분의 명령만을 따를 뿐입니다. 만일 교회가 어떤 조직과 연계하여 서로 다스리고 지배를 받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니므롯의 행태를 따르는 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교회"는 결코 누구의 지배를 받지도 않으며, 또한 지배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성경만을 유일한 권위로 삼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갈 뿐입니다.

 

시날 땅에 있는 바벨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벨탑이 그에 의해 건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왕이 되었다는 사실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바벨탑은 스스로 구원해 보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 탑이 하늘에까지 닿게 하여 멸망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쌓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의 또 다른 특징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구원에 이르겠다는 것은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범죄 한 이후로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신들의 몸을 가린 이 후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종교를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성경을 가진 자들조차도 이러한 종교의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믿음+행위=구원"이라는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니므롯에 의해 번성되어진 거짓 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우리는 구원이 결코 행위에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으로 믿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없이 열심을 다하여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교리는 니므롯이 만들어 낸 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누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러한 참 복음을 접하고 있다면 그는 매우 복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건설(정착)

 

우리가 니므롯에 대하여 주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그는 도시들을 건설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주셨지만 노아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친히 통치하시기를 원하셨고, 또한 그들과 언제나 동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모여 살기를 시작했고, 결국에는 도시를 건설해 한 곳에 정착하고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결국 도시문화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니므롯은 이 문화를 정착시켰고, 그 영향력을 키워갔습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 걸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아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이 주는 각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기뻐하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욱 강력하게 세상의 존재가 결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5,16)

 

그렇습니다. 니므롯으로부터 시작된 세상의 문화는 결국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지도자를 세우고 육신을 만족시키고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배재된 채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은 단 하루도 안정된 도시 문화를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초대 교회 이후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종교인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그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는 자신들의 문화에 동요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생활을 했었더라면 결코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정치에도, 이방 종교에도 타협을 거부하며 죽음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대하여 고집스럽게 거부한 것은 자신의 통치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국적으로 상속받을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더 이상 세상에 속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우리가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곧 다시 창조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신의 신분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경험을 가지지 못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자신의 신분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세상이 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배도한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교회들

 

주님께서 과연 오늘의 교회를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매우 침통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교회는 니므롯이 행하고 있는 모습과 너무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에서 스스로 왕이 되어 사람들 위에 군림하듯이 오늘날의 교회는 주님께서 그 소유가 되심에도 불구하고 목사나 장로들이 마치 교회의 소유자인 것처럼 행세하여 교회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교회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제국을 세워 그곳에 계급을 두고 통치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니므롯이 여러 개의 도시를 세워갔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교회의 대형화를 통하여 힘을 키우고, 그들의 왕국을 확장시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비판을 위하여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미 교회라기보다는 기업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들고 복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철학이나 신학을 들고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니므롯이 했던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에 행위를 더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사를 들여다보면 참된 주님의 교회는 결코 그들의 영역을 넓혀간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목회자를 선전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같이 자신을 낮추려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역교회(Local church)를 표방하며 교회가 주님의 소유임을 믿고 교회가 교회를 간섭하는 행위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날과 같이 기업적인 교회를 가진 적도 없으며, 세상의 정치와 타협한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니므롯은 오늘의 문화를 만들어 놓은 장본인입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문화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왕국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곳이 장차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리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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