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비둘기(창8:6-12)

조회 수 2296 추천 수 0 2010.06.06 22:00:50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까마귀와 비둘기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기에 가장 좋은 비유가 되는 짐승입니다. 이들은 모두 노아의 방주 안에서 심판은 면했지만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방주인 교회 안에도 수많은 까마귀와 비둘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까마귀의 관심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시체 곁을 맴돌며 다닙니다. 죽음의 기미가 있는 곳이라면 여지없이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노아가 물의 감한 여부를 알기 위해 까마귀를 내어놓았지만 돌아오지 않은 이유도 즐비하게 널려 있는 썩은 양식(시체들)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까마귀 같이 오늘날 교회 안에도 생명 없는 것을 위해 애쓰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영혼 구원이라는 성도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물질, 세상지식, 정욕을 위해 노력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세상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상은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5,16)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세상과 대적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국가 권력에 대하여 협조적이며, 나눌 줄 알고, 삶에 있어서도 매우 신실한 자들이므로 오히려 상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까마귀가 방주 안에 있다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교훈은 사실상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세상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동역자들 가운데도 이러한 자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딤후4:10-15)

 

데마나 그레스겐, 디도와 같은 자들은 바울의 동역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자기의 길로 떠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역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거나 도망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모양들이 그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데살로니가와 같은 신실한 성도들이 있는 교회에서 믿음의 삶을 편하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힘겹고 고통스러운 로마를 떠나 안전한 곳에서 믿음의 삶을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행동이 세상을 사랑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비록 힘이 들지만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것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보다 형통한 삶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곧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는 잠시 동안의 행복들은 결국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이 썩어질 것들이며, 결정적으로 주님이 미워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곧 까마귀와 같은 성도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머물기보다는 교회 밖에서의 생활을 즐거워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교회입니까? 아니고 세상입니까? 이 대답의 결과에 따라서 주어질 보상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비둘기의 관심

 

이와는 반대로 비둘기는 초식 동물로 썩은 것을 먹지 않습니다. 동물로서 비둘기의 가장 큰 신체적 특성을 든다면 쓸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쓸개는 몸 안에 있는 독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 비둘기는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지도 않을 뿐 아니라, 먹게 되면 즉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는 짐승입니다. 이는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오직 썩지 아니할 양식을 구하여, 영혼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 갈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 발을 붙여 썩어질 양식을 끝없이 찾아 헤매는 까마귀와는 반대로, 세상에 발을 붙이지 않고 방주인 하나님의 교회를 찾아 주인이 주는 양식을 공급받아 먹을 것입니다. 주인이 주는 양식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십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교회에 대하여 많은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들을 목양하는 자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주님은 언제나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들을 성경을 통하여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 11, 17, 29;3:6, 13,22)

 

이것은 비둘기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말씀을 교회들에게 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많은 무교회주의자들은 개인의 구원을 말하면서 말씀도 각자에게 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교회의 존재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성경을 바로 깨달은 자들이라면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교회는 단순히 외형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교회에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만일 성도 가운데 누군가가 교회를 등한시하고 말씀듣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곧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가 성경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더욱 큰 오류로 빠질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모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종교가 그러한 모습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건전하고 신실한 말씀들을 교회에 공급하심으로서 그들이 장차 더욱 많은 보상들을 얻도록 하십니다. 그곳에서 얻어지는 양식은 가장 안전한 식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경을 연구함으로 오는 오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건전한 교회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바른 방법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과연 배우지 않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배우지는 않고 가르치기만 하겠다고 말한다면 그의 가르침은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오만으로 가득 차서 결국에는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렇게 서로 가르침과 배움을 나누는 곳입니다. 신실한 교회라면 반드시 바른 양식을 먹이게 될 것이고 또한 그와 함께 한 무리들은 바르게 성장해 갈 것입니다.

 

우리는 비둘기가 자기의 집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갔더라도 곧 돌아와 자신의 집에서 안식을 취합니다. 이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세상이라는 곳에서 그들이 취할 것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주님의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들의 주된 거처는 교회가 될 것이며, 또한 안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참 만족은 주님의 교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과연 주님의 교회만을 마음에 두고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래도 목양자들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교회의 재산이 곧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세상과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목양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소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은 그 주님의 교회에서만이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 나도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둘기가 방주 안에 자신의 집을 짓고 세상으로 보내어졌어도 다시 돌아오듯이 참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교회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받았으나 삶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까마귀와 비둘기는 모두 구원을 얻은 새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명하게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새로, 또 하나는 주인을 기쁘게 하는 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삶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까마귀와 비둘기를 통해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결코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위해 힘써야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오직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며, 주인이 공급해 주시는 양식을 받아먹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디 거룩한 삶의 모양을 가짐으로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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