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바울은 독특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에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12)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매우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전하지만 항상 결실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데반의 경우에도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님의 구원자이심에 관한 복음을 전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바울의 경우에도 많은 곳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쫓겨났던 경우들을 성경 안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 더욱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노아의 때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선지자들이 매우 헌신적이며 분명하게 예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핍박을 당하거나 외면을 당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 안에서 매우 명쾌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의 간증을 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행14:27)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 곧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헌신하여 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듣는 자들의 믿음의 문, 즉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문을 여시는 분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사역을 위한 기도뿐만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자들이 마음을 열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드로아에 도착해서 디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지만 그를 만나지 못해 “영 안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디도는 바울의 제자이면서, 또한 매우 소중했던 동역자였습니다. 복음전도자는 세상에서 매우 외로운 싸움을 해야하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그들에게 유일한 위로자가 있다면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디도를 통하여 위로를 얻기 원했을 것입니다. 그가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 그의 심정을 보면 그의 현재 상태가 얼마나 힘든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후7:5)고 말합니다. 그는 이미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결코 복음전도자 혼자만의 힘이나 열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 외칠 때에도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있다면 그들의 소리는 결국 허공에 대고 외치는 소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게 될 수많은 어려움들을 같이 이겨나갈 동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동역자는 위로가 될 뿐만 아니라 복음전도에 대하여 충분한 결실을 맺게 해 주는데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이 땅에서 많은 열매가 있기를 위해서 더욱 많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