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라고 해서 모두가 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옳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매우 잘 못된 결정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최근에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에 대하여 다소 불만스러운 감정을 표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고, 그 일을 처리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다소 못마땅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심한 자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칫 나의 고집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을 더욱 절망적인 상태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더욱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성경 안에서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만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려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마리아가 자신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 머리털로 씻을 때 그것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룟 유다의 생각은 극히 합리적인 것이며, 옳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을 보십시오. 가룟 유다의 생각은 마귀적인 것이며, 오히려 마리아의 일이 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기 전의 빌립도 같은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천 명을 먹이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들을 먹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도 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어린 아이의 도시락에 담겨있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던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때로는 나를 괴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은 많은 부분에서 현실과 충돌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리적인 사고는 때로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들을 판단하는데 사용되어지기도 하며, 또한 지극히 율법적인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그대로 순종했던 아브라함처럼, 산위에 배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노아처럼 자신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한가지 사실 때문에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