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성경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변질을 막아 줄 뿐만 아니라 바른 교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모든 이단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것입니다. 그 까닭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성경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 힘써 왔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그러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최소한 한국 땅 안에는 바른 성경을 갖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지 손에 쥘 수가 있으며, 또한 바른 성경으로 지도하는 사람의 설교를 듣고자 하여도 언제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더욱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을 읽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점에서 바른 성경에 대하여 변증하는 많은 서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성경의 역사와 바른 성경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해를 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책들이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만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성경이 어떠한 것인가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있는 내용들을 읽고 그 말씀 하시는 바를 아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그들의 방식대로 교회 안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의 모임에서조차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경배하고 섬기기 위한 모임이지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뜻을 지도해 주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예배를 "worship service"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지은 저자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 그의 책을 읽어 주는 것이듯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의 책인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 읽기를 쉬지 않는다면 주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1. 성경은 전통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전통이 성경보다 더욱 권위 있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전통들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지키는 자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교회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전통적인 교단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성경의 입장을 앞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교훈하시면서 독특하게 설명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의 끝머리마다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마12:3,5,19:5,21:16,42,22:31,막2:25,12:11,26,눅6:3). 이 말씀은 단순히 바리새인들에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성경보다는 탈무드를 비롯한 장로들의 유전들을 더욱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에 그들의 행동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비단 바리새인들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바리새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듯이 오늘날 성경보다는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 안에서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보다는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님은 성경보다 전통을 신뢰하는 자들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당연히 전통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복된 삶은 성경을 읽는데서부터 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찾습니다. 그들은 강단의 목사가 복을 받으라는 설교를 하면 열광을 하며, 자신은 스스로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을 받지 못하고 영적으로도 가난해지고, 육신적으로도 실패하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 안에서 진정으로 복을 받는 비결들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뜻대로 걷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계1:3)
복을 받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도 읽지 않고 주님의 뜻을 제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자는 자연히 사람의 말을 따라가게 될 것이며, 그것은 대부분 멸망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지나치게 목회자를 의지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존중하는 것은 그가 성경을 가지고 성경 안에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함은 결국 성경 안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며, 그것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렇다면 반드시 하늘에서나 땅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성경읽기는 교회의 부흥을 가져 올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부흥을 갈망합니다. 부흥(revival)은 말 그대로 다시 회복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신실하게 주님을 따랐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주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생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흥과 관련하여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의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돌아 간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서 행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에 도착해서 무조건 성전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행했던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고, 이 일이 결코 느헤미야나 에스라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읽기였습니다(느8:3,8,18,9:3). 이일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들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재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지식을 더하는 것이상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읽혀지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담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헌신할 수 있는 완전한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오늘날 진정한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고 있다면 먼저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을 쓰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읽는 성도들이 없는 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주님은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과 민족과 나라가 부흥이 있기를 구하고 있다면 먼저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이일은 모든 부흥의 시작입니다.
4. 성경을 읽지 않으면 깨달음도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나오는 목사의 설교를 꾸준히 듣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디에서도 목사의 말이 사람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만일 목사의 말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목사의 말이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구원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경이며, 그를 구원에 이르도록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분께서 계시로 내게 그 신비를 알게 하셨나니 (이것은 내가 전에 몇 마디 적은 것과 같으니라. 그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너희가 깨닫게 되리라.)(엡3:3-4)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서적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때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성경을 앞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교묘하게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경을 읽는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 이외에 그 무엇도 우리를 바르게 깨닫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깨닫기를 원한다면 유명한 설교자들의 책을 보기에 앞서 성경을 펼쳐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설교자들의 말만을 신뢰하고, 성경 보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는 반드시 믿음의 삶에서 낙오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의 외모를 통해서 그를 참된 사역자로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판단하시겠습니까? 그 모든 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며,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참된 전도자들을 분명해 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5. 장차 왕이 될 자들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매우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왕이 세워지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하여 왕이 될 자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아엘 백성 가운데 왕이 세워질 것에 대하여 미리 알고 계셨으며, 그들이 왕이 되 f때에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筆寫)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자기 형제들 위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그러면 이스라엘 한가운데서 그와 그의 아들들이 자기 왕국에서 자기 날들을 길게 하리라(신17:18-20)
그렇다면 왕이 될 자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고, 모든 말과 법규를 지켜 행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성경을 읽을 때 치우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아들들(자손)이 자기 왕국에서 자기 날들을 길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성경을 읽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 신분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땅에 통치하러 올 것입니다. 장차 왕으로 통치하게 될 자입니다. 베드로는 현재 우리의 신분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 왕의 신분은 아니지만 왕과 같은 신분의 위치에 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세는 분명해 진 것입니다. 바로 성경을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 읽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악한 왕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우매함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비록 현재의 신분이 연약한 자라고 할 지라도 장차 왕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입니다. 장차 올 왕국에는 성경이 없습니다. 그 때는 주님을 직접 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전히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질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서 성경 읽기를 지속함으로서 왕이 될 자로서 충분한 준비를 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목회자에게 있어서 성경읽기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목회자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유명한 신학서적들과 설교자들의 책을 신뢰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 그것은 때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지만 다만 지식을 전달하는데서 그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
성경을 읽는 것 그 자체만으로서 많은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사실상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성경을 읽는 일들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모든 설교를 대신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교회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에게 명하노니 모든 거룩한 형제들에게 이 서신을 읽어 주라(살전5:27)
물론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바르게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까닭에 먼저 깨달은 자들이 자신의 깨달은 바들을 지도하는 것으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분주한 일상에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전임 사역자를 두고 성경을 연구하게 함으로서 묵상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은 현대 교회들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성경을 읽도록 도와 주고 묵상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지. 성도들로 하여금 모든 것들을 목회자에게 의존적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대 교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성경을 묵상하는 일에 있어서 목회자에게 의존적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하고, 각양 은사에 대한 다양성을 상실해 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나 성도 모두는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경건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 성도들을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을 수 잇도록 해야만 합니다. 만일 성경 읽는 것조차도 누군가에게 의존적이 되고 만다면 그가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어린 아이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