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인하여 힘겨운 시간들을 경험하지만, 어떤 이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당하는 많은 어려움들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역자에게 있어서 가장 힘겨운 순간들이 언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정상적인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은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른 많은 교회들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 안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성경이 설명하기를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전5:1-2)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또한 죄가운데 사는 그들을 바라보는 자들도 그들에 대하여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1:14)고 말한 것과 같이 모든 믿는 자들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매우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사역자였습니다(갈4:12). 그것은 실제로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경건한 삶에 대한 교훈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근심을 까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그들에 대하여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사실상 고린도 성도들의 모습은 바울을 향하여 매우 험한 말과 분노를 일으킬만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책망을 하고 저주를 한다 해도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을 향하여 공격하는 자들에게 용서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서 성도들에게 더 이상 서로에 대하여 악한 감정을 갖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에 대하여 징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일에 대하여 징계하기보다는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용서와 위로를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8)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와 위로가 단순히 외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기초로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용서와 위로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곤경에 빠지게 만드는 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를 사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