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양식입니다

조회 수 2719 추천 수 0 2010.06.05 22:14:56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곧 신앙의 척도를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성경의 말씀을 무시한 채 환상과 계시에 의존하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어떤 이는 성경을 난도질하여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전자는 주로 신비주의자나 기복신앙 인들이며, 후자는 신학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서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며,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신비주의적 목회자와 성경 그 자체보다는 칼빈, 알미니안, 웨슬레 등의 이름을 더 높게 평가하는 신학자들에 의해 빛을 바랜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대하는 자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정상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먹는 양식입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함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요한복음5: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내가 주고자 하는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고자 하는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요한복음6:5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위에 나열한 성경구절에서 보듯이 성경은 곧 예수님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먹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지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과반수를 점령하고 있는 자유주의 뉴에이지, 애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교회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들은 근본 복음주의를 주장하는 교회보다 더 많은 성경공부와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말씀을 양식으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자들은 언제나 말로서 모든 것을 대신하려 합니다. 그러나 양식을 삼고 받아먹는 자들은 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은 곧 생명이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힘이 느껴진다면 그는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력과 느낌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그는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음식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양 상태와 요리법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실상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이며 중보자이시고, 장차 우리의 신랑이 되실 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논리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의 다른 표현으로 영접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우리 안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좀 더 성경을 묵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와 관계가 있는 생명 있는 말씀을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자

"네가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타고난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니 너는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는 이러한 부류 중에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미련한 여자들을 사로잡아 이끄는 자들이 있음이니 이런 여자들은 죄들로 눌려있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리어 항상 배우나 결코 진리를 아는 데 이르지 못하느니라(디모데후서3:1-7)

우리가 열심히 배우고도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면 그것보다 허망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 억울한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구원받지 못했다면 더욱 땅을 치고 원통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현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이렇습니다.

자기 육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묘하게도 경건의 모양(종교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그들은 어리석은 여자(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접근하여 죄를 짓게 하고 항상 배우지만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해서는 버리운 자라고 말합니다(딤후3:8). 사도 바울은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 단 한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가 아닌 것으로부터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기복 신앙과 헛된 철학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 진리가 아닌 것을 구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경건의 모양(종교의 형식)을 가지고 거짓 진리를 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의 눈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힘의 논리로 약한 자를 마구 정죄하고 그 일을 정당화 할 때는 어느덧 우리도 그 무리 속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지만 성경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데 지혜를 가져다 주어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거짓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네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이 성경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3:15)

부디 이 혼탁한 세대에 거짓 진리로부터 현혹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먹는 자의 자세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5:3)

"그들의 마음은 비대하여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기뻐하나이다(시편119:70)

어떠한 음식이든지 배가 부르면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아무리 맛이 없는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으로 무리들을 먹이신 때는 아주 좋은 비유입니다. 본래 보리떡은 매우 맛이 없는 것이지만 이미 사흘을 굶은 무리들은 맛에 관계없이 배불리 먹었습니다(마 15:32-38)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양식이기 때문에 배고픈 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늘 가난하고 배고픈 자가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단순하게 잘 사는 사람은 지옥 가고, 가난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일까요?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진 재산을 모두 내놓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논리적으로 볼 때는 타당한 것처럼 보이고,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부자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형태의 졸부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성실함과 땀과 노력으로 부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매도하여 지옥 백성으로 정죄해 버린다면 성경은 더 이상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가난하고 배고픈 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영적인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식을 공급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양식마저도 독약을 타서 영혼을 죽이려 드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거지가 양식을 찾아 헤메듯이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자들은 생명의 양식을 찾기 위해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기억해야 할 사실은 양식을 한 번 먹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불평이 많은 성도가 목사가 몇 년 전에 했던 설교를 다시 했다고 불만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 문제에 대해서 변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식탁에 앉아 식사를 기다립니다. 어느 가정이나 먹는 반찬의 종류는 거의 비슷합니다. 5-6가지의 반찬에 밥을 주식으로 해서 먹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찬의 가지 수가 적어서 병이 들거나 영양실조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맛있게 먹고 난 후 건강한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식사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식탁으로 모입니다. 왜냐하면 다 소화가 되었고 다시 양식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우리의 음식 문화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목사는 매 주일마다 같은 말씀을 반복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부활, 구원, 영접 등 기본적인 메뉴에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더합니다. 성도들은 이 양식을 받아먹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어도 결코 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화가 되어서 배가 고파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받아먹습니다. 불평하거나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배가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이 주는 양식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가 불평과 불만으로 채워져 간다면 영적 상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즉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주의 말씀이 갈급한 자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은 단순히 지식이나 학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영이요 생명으로서 우리에게 들어와 인격으로 자리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자라면 성경을 항상 묵상하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부디 말씀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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