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조건(5) 아브라함의 후계자

조회 수 2723 추천 수 0 2015.03.05 13:51:21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1-5)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녀들에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믿음의 조상으로서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믿음의 본을 보여주었던 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장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상속을 바라보고 그의 씨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믿고 나아갔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조급함과 육신적인 생각들로 인하여 많은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주변에 후계자로 생각했던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나올 때에 롯을 함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가 롯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데라의 장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생이었던 하란이 먼저 죽습니다. 이 일들로 인하여 하란의 아들이었던 롯은 큰 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을 아버지와 같이 여기고 살았습니다.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롯은 아들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조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을 통하여 얼마나 롯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족을 떠나라(12:1)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또한 재산의 문제로 인하여 갈등을 겪게 될 때에 그는 가장 좋은 것들을 롯에게 양보하였습니다(13:1-9). 뿐만 아니라 롯이 소돔성에 있을 동안에 주변의 연합군들에 의하여 공격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겼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롯의 모든 재산을 찾아주었습니다. 그의 롯에 대한 사랑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전해 듣고는 롯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청을 하였고,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천사들을 보내서 그의 가족들을 건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롯을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소돔성에서 나온 이후 소알성에서 그의 딸들과 동침을 하여 모압과 암몬을 낳았고, 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원수가 되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같이 여겨졌던 롯!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이 기대하고 있었던 그가 장차 받게 될 상속을 위한 자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롯이 약속된 자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낙심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을 함께 해왔던 롯과의 이별도 가슴이 아픈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가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15:3) 그의 이러한 생각은 결코 생각 없이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청지기 즉 아브라함의 종이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종들이 있었지만 엘리에셀을 하나님 앞에 드러낸 것으로 보아서 분명히 충성스러운 자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의 라반의 집으로 보내어진 종(24:1-67)이 바로 엘리에셀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아브라함이 말하고 있는 그 종은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우며, 아브라함이 장차 받을 상속을 위해 준비되어진 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그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토록 아브라함에게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종이었지만 그도 역시 장차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믿음을 상속할 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엘리에셀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이 도우시는 분이라 할지라도 약속된 자가 아니므로 상속을 바라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중요한 결단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의 씨를 통하여 상속자가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는 불가능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가 이미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임신할 수 없었던 그녀가 이제는 태가 끊어졌으므로 가능성마저 없어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또 다른 대안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 대안은 바로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방법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녀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약속된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생각만으로 약속된 자녀를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브라함의 자녀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이것은 후에 그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건을 만들어 내었고, 결국에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먼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성경대로 살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씨가 없이도 식물이 되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라고 하는 질문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씨에는 관심이 없고 열매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 있는 것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씨는 곧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3:16). 이 말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였느냐 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성경에 있는 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면 그들의 구원은 결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열매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기만 하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자신의 의나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어 보겠다고 하는 자와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요? 구원과 상속은 결코 그들의 행위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2:16).


그렇다면 어떻게 이삭만이 유일한 상속자인가? 그것은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처음에 약속된 대로 나온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조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노력해서 얻어진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주님의 계획 속에서 완성되어진 것이었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일을 당하는 자들이 웃음을 지을 정도로 기막힘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18:9-15).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멸시와 천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구세주가 되심을 알리시기 위해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않으셨으며, 오히려 30세가 되었을 때에 사람들 앞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으며, 또한 수많은 유혹에서도 결코 타협하거나 넘어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성경의 약속대로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고전15:3,4)


성경의 약속대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코 바른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번 받은 구원이 안전하다고 믿는 이유도 역시 성경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있고, 또한 그에 따르는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도 바로 성경이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장차 주님 앞에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도 바로 성경이 그렇게 약속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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