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그러나 사울의 군대 대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그를 길르앗과 아술 족속과 예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더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였으며 이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러나 유다의 집은 다윗을 따르더라.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유다의 집을 다스린 기간은 칠 년 육 개월이더라. (삼하2:8~11)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기간 동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있었고,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기는 했지만 40년 동안을 통치해 온 사울은 안정적인 국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하들은 다윗이 오는 것을 반가와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고, 사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아들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음을 당했지만 넷째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은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왕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를 사울을 추종하던 자들은 다윗을 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기회를 엿보면서 약 5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 사울 왕에게 충성했던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이스보셋을 길르앗과 아술 족속과 예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 이스보셋의 나이가 사십 세였습니다. 유다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파들을 이스보셋을 다랐던 그의 왕권은 곧 회복되어 다윗을 몰아내고 아버지 사울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에게 쫓겨서 결국 요단강 동쪽 마하나임을 도성으로 하여 2년간 통치하는 것으로 그의 왕권을 향한 도전은 끝이 납니다.
그는 본래 에스바알, 즉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가졌지만 후에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보셋으로 고쳤습니다(삼하2:2 8, 대상 8:33, 9:39).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적절한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처음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에스바알 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 그의 주변이 그리 신앙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경험했듯이 믿음의 사람 이면에는 부모를 포함한 믿음의 선조들이나 스승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의 가정에서 훌륭한 믿음의 일꾼이 나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성경적으로도 믿음이 계승되는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믿음의 선조들이나 스승을 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스보셋은 왕권을 둔 다윗과의 경쟁에서 결코 적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의 세력은 점차 약해졌고, 다윗은 강해졌습니다(삼하3:1). 어찌보면 이스보셋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많은 원인이 있었지만 싸움의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곳에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 모세가 이끄는 백성과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출17:8-16). 이 전쟁에서 싸움에 경험이 없었던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대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적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승패는 모세의 두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의 두 손이 올라가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이기고,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결국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셨던 것이고, 모세의 손이 아론과 훌에 의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들려 있을 때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군대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자신의 의지를 따라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마귀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분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전쟁에서 좌절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 간단한 원리들을 무시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전쟁의 승리가 오직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보셋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아브넬이라는 유능한 장군을 등에 업고 다윗을 이기려 합니다. 그 당시 다윗의 군대는 대부분 광야에서 떠돌아 다닐 때에 얻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략이나, 전술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다윗에 대한 충성심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보셋은 유능한 자들을 그의 곁에 두고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보셋이 붕괴하게 되었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은 점차 권세를 잡아갑니다. 마침내 그는 사울의 첩이었던 이스바라는 여인을 간통하게 됩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이스보셋은 그를 책망하게 됩니다(삼하3:6-7). 결국 아브넬은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보셋과 대적하게 되면서 결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버리고 지금까지 대적하며 싸웠던 다윗에게 돌아 갈 뜻을 전하게 됩니다(삼하2:12). 다윗은 사울을 딸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아브넬을 받아들이기로 하지만(삼하3:13) 아브넬은 요압에 의해서 죽음을 당합니다.
이 일 후에 이스보셋은 힘을 잃게 되었고, 그도 낮잠을 자던 중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을 대적했던 이스보벳의 모든 세력들은 스스로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다윗은 아브넬과 이스보셋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이스보셋을 죽였던 레갑과 바아나도 처형을 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윗이 레갑과 바아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왕을 죽인 협의로 처형당했습니다. 다윗은 비록 이스보셋이 자신을 대적하고 있었지만 그가 사울의 아들이자 요나단의 형제로서 그의 편이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 일 후에 이스라엘은 다윗에 의해 통합됩니다.
이스보셋은 왕권을 꿈꿨지만 결국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무너뜨리는데 칼과 방패를 들고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적했고, 결국에는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쟁이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보면 총과 칼과 같은 무기로 전쟁을 해서 망하는 국가보다는 스스로 부패해서 망하는 국가가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전쟁의 승패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를 만나게 되는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 간에 충분한 교제가 없고, 서로가 비판하고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깨어서 승리하는 생애를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기간 동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있었고,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기는 했지만 40년 동안을 통치해 온 사울은 안정적인 국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하들은 다윗이 오는 것을 반가와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고, 사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아들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음을 당했지만 넷째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은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왕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를 사울을 추종하던 자들은 다윗을 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기회를 엿보면서 약 5년여의 세월이 흐른 후 사울 왕에게 충성했던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이스보셋을 길르앗과 아술 족속과 예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 이스보셋의 나이가 사십 세였습니다. 유다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파들을 이스보셋을 다랐던 그의 왕권은 곧 회복되어 다윗을 몰아내고 아버지 사울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에게 쫓겨서 결국 요단강 동쪽 마하나임을 도성으로 하여 2년간 통치하는 것으로 그의 왕권을 향한 도전은 끝이 납니다.
그는 본래 에스바알, 즉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가졌지만 후에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보셋으로 고쳤습니다(삼하2:2 8, 대상 8:33, 9:39).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적절한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처음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에스바알 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 그의 주변이 그리 신앙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경험했듯이 믿음의 사람 이면에는 부모를 포함한 믿음의 선조들이나 스승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의 가정에서 훌륭한 믿음의 일꾼이 나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성경적으로도 믿음이 계승되는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믿음의 선조들이나 스승을 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스보셋은 왕권을 둔 다윗과의 경쟁에서 결코 적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의 세력은 점차 약해졌고, 다윗은 강해졌습니다(삼하3:1). 어찌보면 이스보셋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많은 원인이 있었지만 싸움의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전쟁의 결과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곳에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 모세가 이끄는 백성과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출17:8-16). 이 전쟁에서 싸움에 경험이 없었던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대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적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승패는 모세의 두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의 두 손이 올라가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이기고,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결국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셨던 것이고, 모세의 손이 아론과 훌에 의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들려 있을 때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군대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자신의 의지를 따라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마귀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분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전쟁에서 좌절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 간단한 원리들을 무시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전쟁의 승리가 오직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보셋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아브넬이라는 유능한 장군을 등에 업고 다윗을 이기려 합니다. 그 당시 다윗의 군대는 대부분 광야에서 떠돌아 다닐 때에 얻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략이나, 전술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다윗에 대한 충성심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보셋은 유능한 자들을 그의 곁에 두고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보셋이 붕괴하게 되었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은 점차 권세를 잡아갑니다. 마침내 그는 사울의 첩이었던 이스바라는 여인을 간통하게 됩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이스보셋은 그를 책망하게 됩니다(삼하3:6-7). 결국 아브넬은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보셋과 대적하게 되면서 결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버리고 지금까지 대적하며 싸웠던 다윗에게 돌아 갈 뜻을 전하게 됩니다(삼하2:12). 다윗은 사울을 딸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미갈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아브넬을 받아들이기로 하지만(삼하3:13) 아브넬은 요압에 의해서 죽음을 당합니다.
이 일 후에 이스보셋은 힘을 잃게 되었고, 그도 낮잠을 자던 중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을 대적했던 이스보벳의 모든 세력들은 스스로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다윗은 아브넬과 이스보셋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이스보셋을 죽였던 레갑과 바아나도 처형을 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윗이 레갑과 바아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왕을 죽인 협의로 처형당했습니다. 다윗은 비록 이스보셋이 자신을 대적하고 있었지만 그가 사울의 아들이자 요나단의 형제로서 그의 편이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 일 후에 이스라엘은 다윗에 의해 통합됩니다.
이스보셋은 왕권을 꿈꿨지만 결국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무너뜨리는데 칼과 방패를 들고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적했고, 결국에는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쟁이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보면 총과 칼과 같은 무기로 전쟁을 해서 망하는 국가보다는 스스로 부패해서 망하는 국가가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전쟁의 승패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를 만나게 되는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 간에 충분한 교제가 없고, 서로가 비판하고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깨어서 승리하는 생애를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