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사울

조회 수 5627 추천 수 0 2010.06.05 21:30:03

다윗과 사울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통해서 다윗의 입장에서 사울을 보는 관점만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감안한다면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원수와도 같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 대하여 단 한번도 원수와 같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에 대하여 왕으로 세우기를 힘썼고, 심지어 죽을 때까지도 마음으로부터 슬퍼했던 자였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사울과의 관계를 맺었던 생애를 통하여 우리의 인생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더불어 갈등하고 고민하며, 심지어 원수와 같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다윗을 통해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1. 사울에게 필요한 사람 다윗

다윗과 사울의 만남은 그 자체로부터 결코 평범한 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첫 만남은 사울이 악한 영이 들었을 때에 다윗이 악한 영을 쫓아내는 궁중의 악사로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입니다(삼상16:16). 이후로 다윗은 정식 군사는 아니었지만 불레셋의 장군이었던 골리앗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면서 사울이 통치했던 왕국을 건져내는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삼상17:41-49). 사울도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다윗이 가서 지혜롭게 행동하매 사울이 그로 하여금 군사들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온 백성의 눈앞에서와 사울의 신하들의 눈앞에서 그가 인정을 받으니라(삼상 18:5)

한 나라의 왕이 훌륭한 신하를 둔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과 같은 신하는 두게 됨으로서 그의 왕권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고, 다윗은 사울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사울이 통치하고 있는 이스라엘 왕국을 위해 충성하고자 했던 다윗의 자세는 결코 변함이 없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사울을 떠나면서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하니라.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옮겨서 자기를 떠나게 하고 또 천인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서 들어오고 나가며 그 모든 길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니라.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삼상 18:12-14)

왕이 신하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의 통치를 안정되게 하는데 있어서 매우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사울 스스로 다윗을 견제함으로 인하여 그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수많은 갈등들을 낳게 되었고, 나중에는 원수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마음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물론 그 원인은 주께서 그로부터 떠났고 악한 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를 원한다면 주께서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머물러 계시기를 구하고,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울을 사랑했습니다. 비록 사울이 그를 미워하고 원수처럼 대했어도 그는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결국 사울로 하여금 사랑을 깨닫도록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함께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더욱 필요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애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2. 다윗이 사울보다 백성에게 더욱 사랑을 받음

다윗은 분명히 사울보다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하게 해 둘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인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던 것은 여전히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백성에게 인기가 있는 것과 통치자의 자리에 있는 것을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아올 때 곧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살육하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도시에서 나아와 노래하며 춤추며 작은 북과 악기를 가지고 기뻐하며 사울 왕을 맞이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서로 화답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니라(삼상 18:6-7)

백성들의 다윗을 위한 춤과 노래는 사울의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한때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자였지만 이제는 다윗에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인기는 사울로 하여금 다윗을 원수가 되도록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다윗이 인기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들 앞에서 들어오고 나갔음이더라(삼상18:16)

다윗은 당시에 왕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백성들 사이를 왕래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왕의 신분으로 있는 사울보다는 다윗의 몸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친밀했고, 사랑을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인기가 있기 위해서는 대중들과 가깝게 접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백성들의 사랑을 힘입어 왕이 되었지만 후에는 그의 아들 압살롬과 같은 반역의 무리들에 의해 궁에서 쫓겨났던 적이 있다는 사실들을 생각한다면 백성들과 더불어 보다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나 사회, 정치와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기가 잇는 것과 지도력은 다른 것입니다. 인기가 있다고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아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인기 순으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면 아마도 수많은 연예인(영화배우, 가수...)들 가운데 뽑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연예인들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보기도 하지만 그들이 선출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도자와 인기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가 유능한 부사역자(부목사, 전도사...)를 두게 되었을 때 그것을 매우 기뻐하는 목회자는 매우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를 견제하는 지도자는 오히려 그 지도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실력 있는 부사역자는 가르치는 것도 잘 하겠지만 대부분 주님을 위해서 헌신적이며, 겸손한 성품을 지닌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를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교회는 부흥될 것이며, 또한 담임 목회자는 성도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울은 지도자로서 기본적인 자세를 잃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자신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그것은 지도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인기와 지도력을 구분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3. 다윗의 원수가 된 사울

결국 사울은 다윗의 원수가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것은 질투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매우 사소한 것이었지만 사울 자신에게 있어서는 매우 큰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윗은 단 한번도 사울에게 대하여 대항하거나 불순종하여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지만 사울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으며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여 계속해서 다윗의 원수가 되니라(삼상18:28-29)

성경은 사울이 다윗과 원수가 되는 동기가 두려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물론 주변에서 협박을 통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우리는 협박을 받아서 원수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만 합니다. 사울은 다윗의 행동만을 보고 스스로 원수가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이러한 현상들은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견제하고 원수를 맺는 경우들을 목격합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비방하고 욕하고 심지어 원수와 같이 대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진리를 대함에 있어서도 성경대로 사는 자들이 많은 공격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근거합니다. 성경대로 사는 자들은 결코 원수들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에서 벗어나 이단 교리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진리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원수들을 만들고 배방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이 시대에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진리대로 살지 않는 자들입니다. 더욱 많은 사악한 교리들을 가지고 더 많은 지옥 자식을 만들고 있는 자들입니다.

진리 안에서 사는 자들은 오직 성경만을 권위로 삼고 그 안에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비진리를 가지고 제 아무리 세력을 확장시켜 간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후에 심판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불쌍한 심정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 안에서 원수 맺으려는 마음을 없애야만 합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이어져 온 기본적인 마음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4. 끝까지 사울을 보호하는 다윗

다윗이 사울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사울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향해 칼과 창으로 위협하는 사울을 바라보면서 죽일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으면 만일 다윗이 사울을 죽였어도 정당방위라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사울의 목숨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내밀어 내 주 곧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주]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이는 그가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종들을 금하여 일어나 사울을 대적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 뒤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므로 다윗이 자기 얼굴을 땅으로 숙여 절하니라(삼상24:6-8)

다윗의 주변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 것을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사울이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진정한 원수 사랑이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서 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구를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목숨까지도 내놓은 것을 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원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참는 것으로도 매우 훌륭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인내는 원수에 대하여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지만 사랑은 원수에 대하여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원수에게 대하여 인내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도록 권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에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이 날 네 눈이 내 혼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크게 잘못하였도다, 하니 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창을 보소서. 청년들 가운데 한 명을 오게 하여 가져가게 하소서. [주]께서 각 사람의 의로움과 신실함을 갚아 주시기 원하오니 이는 [주]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겨주셨으되 내가 손을 내밀어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려 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보소서, 이 날 내 눈이 왕의 생명을 높이 든 것같이 [주]의 눈이 내 생명을 높이 드사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들을 행하겠고 또 언제나 이기리라, 하니라. 이에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처소로 돌아가니라(삼상26:21-25)

우리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윗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우시의 사랑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축복을 하고 떠납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는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들을 행하겠고 또 언제나 이기리라”고 말합니다. 이후로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죽이기 위해 다니지 않습니다. 그를 원수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결국 원수의 관계를 맺으며 강력한 힘을 가진 사울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사랑을 무기로 싸윘던 다윗의 승리로 끝난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5.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사울이 죽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축제라도 해야 할 입장이지만 그는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주]의 백성과 이스라엘의 집이 칼에 쓰러졌음으로 인하여 저녁때까지 애곡하여 슬피 울며 금식하니라(삼하1:11-12)

다윗은 자기 옷을 찢고 저녁때까지 애곡하며 슬피 울며 금식합니다. 그는 사울에 대하여 왕으로서 충분한 예우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사울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을 위하여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위해 애곡하고(삼하1:17)

다윗의 슬픔은 결코 가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실로 사울을 사랑했고, 그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결코 겉치레로 사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내면으로부터 오는 진실한 사랑을 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사랑을 통하여 진실한 사랑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결론

오늘날 우리에게는 원수가 없습니까? 만일 우리에게 원수가 있다면 사랑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희생의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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