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서 사역기간 중 통치자

조회 수 3019 추천 수 0 2012.09.13 15:28:10

대선지서 사역기간 중 통치자

 

웃시야(B.C 791-739) 분열 유다 왕국의 10대 왕으로 "웃시야"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 열왕기하 15장 1절에는 아사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 출신 어머니 여골리야와 아버지 아마샤 사이에서 태어나 16살에 재위에 올라 엘랏을 재건해 유다 왕국에 복귀시키고 하나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갓과 야브네, 아스돗의 성벽들을 무너뜨렸다.(역대하 26:6) 그리고 블레셋(팔레스타인) 지역에 아스돗 등 새 성읍들을 세웠다.

 

웃시야는 강해지면서 교만해져 패악을 저지르게 되었다. 하나님을 배신해 제사장만의 권한을 무시하고 분향 제단 위의 향을 피우려 성전에 들어갔고 그때 아사랴 제사장이 용감한 사람 80명과 함께 들어가 웃시야 왕을 막고 경고를 했다. 그러자 웃시야는 나병이 생겨 평생을 앓았고 별궁에 살았으며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렸다.

 

요담(B.C 740-736) 분열 유다 왕국의 11대 왕으로 다른 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만 한 왕이었다. 차독의 딸 여루사의 아들로 자기 아버지 웃시야가 하는 그대로 하나님을 섬겼으나 아버지와는 달리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백성들은 여전히 타락해 있었다.

 

아하스(B.C 736-716) 분열 유다 왕국의 12대 왕으로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옳은 일들을 하지 않았다. 아하스는 즉위하자마자 창문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이로써 아하스에게 불길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하스는 다시 우상 숭배를 시작하여 바알들을 위한 신상을 만들고 벤 힌놈 골짜기에서 향을 피우고 산다오가 언덕과 온갖 푸른 나무 아래에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웠다.

그러자 아람군들이 쳐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수도 다마스커스로 데려갔고 북쪽 이스라엘은 유다에 쳐들어와 단 하루 만에 12만 명의 군사들을 쳐 죽였고 궁내 대신과 임금 다음의 서열인 엘가나를 살해했다. 그리고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도 사마리아로 끌려갔다. 이스라엘 왕국에 이어 에돔이 다시 유다를 쳐 포로들을 끌고 갔고 블레셋 사람들도 평원 지대와 유다 남부의 성읍들을 점령했다.

결국 아하스는 앗스르(아시리아)로 사신을 보내 앗수르의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오히려 유다를 포위해 버렸다. 그래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과 대신들의 집에서 재물을 빼앗아 앗스르 왕에게 주었으나 여전히 유다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렇듯 아하스는 수많은 죄를 저지르다가 죽었다.

 

히스기야(B.C 715-686) 유다 왕국 13대 왕으로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다. 유다 왕국의 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이며 예언자 이사야가 그의 재위기 때 활동했다. 아하스의 아들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옳은 일들을 하였다. 히스기야는 맨 먼저 성전의 문들을 열고 보수하였으며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모아 성전을 정화하도록 명령하였다.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에 착수했다. 맨 먼저 우상 숭배를 금지하여 산당들을 없애고 기념 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들을 잘라버렸다. 또한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을 조각내 버렸다. 그리고 온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무너뜨리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히스기야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다시 배치해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저마다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치고 임무를 맡았다. 모든 번제물들과 십일조를 가져와 여러 더미로 쌓아 놓아 바쳤고 각자 몫을 나누어 주어 종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앗수르(아시리아)가 힘을 키워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켜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의 왕 호세아 왕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에 히스기야는 각 지방의 성들의 방비를 튼튼히 하고 아시리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이후 마침내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쳐들어와 히스기야에게 은 300탈렌트와 금 30탈렌트를 요구하며 쳐들어왔다.

산헤립은 곧 라기스를 많은 병력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이에 히스기야 왕과 아모tm의 아들 이사야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의 모든 지휘관과 장수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산헤립은 수치심을 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의 친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했고 표징을 주어 15년을 더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교만해져 은혜에 보답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려졌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바로 교만했던 것을 뉘우쳤고 그 이후 히스기야가 재위할 동안은 하나님의 진노가 닥치지 않았다.

히스키야는 대단한 부와 영광을 누려 은과 금, 보석, 향료, 작은 방패와 온갖 값진 기물들을 보관한 창고를 짓고 수확한 곡식과 포도주, 기름을 저장할 곳집, 온갖 가축 우리와 양 우리들도 지었다. 또한 기혼 샘의 위쪽 물줄기를 막아 끌어들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므낫세(B.C 687-642) 유다 왕국의 14대 왕으로 므낫세는 12살에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들을 저질렀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무너뜨렸던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 제단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세라 목상들을 만들고 하늘의 모든 군대를 경배하고 섬겼다. 심지어는 성전 안에도 제단들을 세웠다. 성전 두 뜰에 하늘의 모든 군대를 위한 제단을 세웠고 벤 힌놈 골짜기에는 자기 아들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고 요술과 마술과 주술을 하였으며 영매와 점쟁이들을 두었다.

하나님이 경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악한 짓을 저지르자 앗수르의 군대가 쳐들어와 므낫세를 갈고리로 잡아 청동 사슬로 묶어 끌고 갔다. 이렇게 되자 므낫세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해 회개를 했고 하나님은 그의 간청을 들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므낫세는 기혼 샘 서쪽 골짜기에서 '물고기 문' 입구에 이르기까지 다윗 성의 외곽 성벽을 쌓고 그 성벽을 매우 높이 올렸다. 그리고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에 군대의 장수들을 배치했다. 또한 성전에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고 성전에 있던 산과 예루살렘에 자기가 세운 제단들을 모두 성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의 제단을 수리하고 그 위에서 제물을 바치며 회개하였다.

 

아몬(B.C 642-640) 유다 왕국의 15대 왕으로 자기 아버지 므낫세처럼 악한 짓을 저질렀다.

므낫세의 아들로 22살에 왕위에 올라 악한 짓을 저질렀다. 므낫세가 만든 온갖 조각 신상에 제물을 바치고 그것들을 섬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잘못들을 저질렀다. 그러자 그의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아몬은 궁궐 안에서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 신하들을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새 임금으로 세웠다.

 

요시야 (B.C 640-609) 유다 왕국의 16대 왕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옳은 일을 하여 히스기야 등과 함께 유다의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아몬과 아다야의 딸 여디다의 아들이었던 요시야는 아몬이 살해당하자 백성들에 의해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하나님에 눈에 드는 옳은 일들을 하였고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걸었다.

그는 어린 몸으로 하나님을 찾아 산당과 아세라 목상, 조각 신상, 주조 신상들을 치우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바알 제단도 무너뜨리고 제단 위 분향 단들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과 조각 신상과 주조 신상들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는 그 가루를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던 자들의 무덤 위에 뿌렸다.

그리고 사제들의 뼈를 그 제단 위에서 태웠고 이렇게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화하였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에 이르기까지의 성읍들의 광장에서, 곧 온 이스라엘 땅에서 제단을 무너뜨리고 아세라 목상과 조각 신상들을 깨뜨려 가루로 만들고 분향 단들을 부순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요시야는 나라와 성전을 정화한 다음 성전을 보수하게 하였다. 그리고 므낫세와 에브라임, 나머지 이스라엘 지역의 모든 주민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레위인에게서 모은 돈을 힐기야 대사제에게 내놓았다. 그 돈을 성전 보수 공사를 책임지는 일꾼들에게 나눠주고 일꾼들에게 성전을 고치고 보수하게 하였다. 또 목수와 석수에게도 돈을 주어 전 유다의 왕들이 폐가로 만들어 버린 건물들을 고치는 데 쓸 깎은 돌과 도리와 들보 재목을 사게 하였다.

그 사람들은 일을 성실히 하여 그들을 지휘할 사람으로 레위인들이 임명되었다. 악기를 잘 다루는 레위인들은 짐꾼을 감독하고 각종 작업을 하는 일꾼들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몇몇 레위인들은 서기관, 행정관, 문지기 역할을 맡았다.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온 돈을 꺼내고 있었는데 힐기야 제사장이 모세를 통해 주어졌던 하나님의 율법을 발견했다.

요시야는 사람을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원로들을 소집해 왕은 모든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사제들, 레위인들과 높은 자에서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들이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를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잘 지켜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하나님의 앞에서 계약을 맺었고 예루살렘과 베냐민의 사람도 그 계약에 참여시켰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나님의 계약을 잘 따르게 되었고 요시야는 모든 지역에서 역겨운 것들을 없애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이 모든 일이 있고 난 다음 요시야는 성전을 다시 정비하였다. 그 후 이집트의 왕이 싸우려고 나왔다. 요시야는 사신을 보내 싸움의 이유를 말하라고 했으나 물러서지 않자 므기도 평원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러던 중 요시야 임금은 궁수들이 쏜 화살에 맞았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나 곧 전사하고 말았다. 그가 죽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예언자 예레미야도 그를 위한 애가를 지었다.

 

여호아하스 (B.C 609) 유다 제 17대 왕으로 이름은 '여호와께서 붙드셨다'는 뜻이다. 통치 기간은 '3개월' 가량이다. 자기 아버지 요시야와는 달리 악한 짓을 저질렀다. 여호아하스의 다른 이름은 '살룸'이다(대상3:15 ; 렘22:10-12).

요시야와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의 아들로 23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결국 재위 3개월만에 이집트의 왕 느고가 쳐들어와 하맛 지방의 리블라에서 그를 잡아 가두어 그의 형제 여호야김을 새 왕으로 세우고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유다에 은 100달란트와 금 1달란트를 배상금으로 바치게 하였다.

 

여호야김(B.C 609-598) 유다 왕국의 18대 왕으로 그도 역시 악한 짓을 저질렀다. 본명은 엘리야김이다. 요시야의 아들로 본명은 '엘리야김' 이었으나 이집트의 왕 느고가 쳐들어와 형제이자 왕이었던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워 이름을 '여호야김' 이라 바꿨다. 그리고 이집트에게 배상금을 물었다.

25세에 왕위에 오른 여호야김은 다른 왕들과 다름 없이 악한 짓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바빌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 2세가 쳐들어와 그를 끌고 가 3년 동안 신하로 두었다.

그 후 다시 돌아와 바빌론에 반역을 하였으나 갈데아와 아람과 모압, 암몬 등의 약탈대가 쳐들어왔다.

 

여호야긴(B.C 598-598) 유다 왕국의 19대 왕으로 그도 역시 악한 짓들을 저질렀다. 여호야김의 아들로 18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도 악한 짓들을 저질렀고 재위 3달 만에 바빌론 제국의 왕 느브갓네살 2세가 또 다시 쳐들어와 성전의 값진 기물들을 약탈하고 그를 폐위시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의 삼촌이었던 시드기야를 새 왕으로 세웠다.

 

시드기야(B.C 597- )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이다.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이며, 18대왕인 여호야김의 형제가 된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참모들의 만류에도 거리낌없이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당시 강성하던 바빌론 제국에 반기를 들다가,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2세의 예루살렘 침공을 맞아 싸우던 끝에 패배하여 두 아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처형당하고 자신은 두 눈을 뽑힌채 바빌론으로 끌려가 그곳 감옥에서 남은 삶을 보내야 했다. 예루살렘은 느부갓네살 왕의 지시로 철저히 파괴되어 잿더미가 되었고, 적은 수의 장애인과 노약자를 뺀 모든 국민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느부갓네살(B.C 605-562)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란 '느보야 그 경계를 보호하라'는 뜻의 이름으로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왕으로 새 바벨론제국 창건자다.

갈그미스에서 애굽왕 느고를 파했고(예레미야 46:2) 예루살렘에 침입하여 시드기야를 왕위에 세웠다(열왕기하 24:1-8). 시드기야가 배반함으로 BC 587년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하였다(열왕기하 25:1).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정신병에 걸려 야수의 생활을 하다가(다니엘 4:33) 정신병이 회복된 후 하나님을 찬송한다(다니엘 4:34).

다니엘이 그의 꿈을 해석한 후 다니엘을 바벨론의 치리자로 삼았고(다니엘 2:7) 그후 두라 평원에 금 우상을 경배하게 하였다. 경배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세 청년을 사자굴과 풀무불에 던졌으나 머리칼 하나도 상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을 건져내어 인격을 더욱 높여 주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니엘 3장).

 

다리오 이름의 뜻은 ‘강박하는 사람’이다. 메대의 왕 다리오는 벨사살의 뒤를 이어 바벨론을 통치한 자(단5:31)이다. 120방백을 감독하는 3인중 다니엘을 그 한 사람으로 삼았고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이적으로 구출된 후 전국에 선포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B.C. 521년에 대 바사(페르시아) 왕으로 선언한 히스다페스의 아들로 역사상 대전략가중의 한 사람이다. 헬라를 정복하려던 계략이 마라돈 전쟁의 패전으로 실패하였으니 세계사에 크게 기록 된 장면이다. 다리오가통치하는 동안에 유대 백성은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성전 중수공사를 계속하였다(스 6:15).

바사의 다리오는 바사(페르시아)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고노마노’인듯 하다. B.C. 330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망하였다.

 

고레스(B.C 546-529) 캄비세스 1세의 아들로 파사(페르시아)제국의 초대 왕으로 바벨론을 정복한 사람이며 유대 백성의 귀국을 허락한 사람으로 B.C 549년 메대의 속박을 벗어나 BC 546년 리디아를 물리치고 동시에 그리스의 이오니아 제도시를 정복, 동으로 옮겨 인도 지경에까지 확장했다. 이사야는 고레스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보았다(사44:27,28; 45:1-5).

고레스 B.C 539년 10월 29일에 바벨론에 입성했으며, 자신을 백성들의 해방자로 자처했다. 그래서 그는 바벨론에 남겨 두었던 신상들을 원래 있던 성읍들로 되돌려 보냈으며, 포로 된 사람들을 귀향시키는 인정어린 정책을 시행했다. 그의 온건한 정치는 자연히 히브리인에게도 파급되었다.

그는 이스라엘민족에게 유다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권면했다(대하36:22, 23: 스1:1-6). 그는 아들 캄비세스에게 왕위를 물려준(BC 530) 후 원정을 나갔다가 그 해 가을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 44:28,45:1, 대하 36:22, 스 1:1-8, 4:4, 단1:21,6:28,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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