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귀와 영화를 누린 가장 화려한 왕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참으로 그가 크게 주의를 기울이고 탐구하여 많은 잠언을 정리한 자라고 말합니다(전12:9). 실제로 그는 삼천 개의 잠언을 말하고 천 다섯 편의 노래를 지은 자입니다(왕상4:32). 이는 그가 단순히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닌 백성의 스승으로서 많은 가르침을 주는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지혜의 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성경의 첫 장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의 대부분이 솔로몬에 의해 기록된 것이고, 그는 잠언을 통해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전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의 시작이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데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1:7). 잠언의 내용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잠언을 기록한 목적(1:1-9)
솔로몬은 잠언을 시작하는데 그 목적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2) 명철의 말씀들을 파악하게 하고
3) 지혜와 정의와 공평의 훈계를 받게 하며
4)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5) 명철한 자는 지혜로운 권고들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잠언과 해석과 지혜로운 자들의 말들과 그들의 은밀한 말들을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매우 단순한 이 가르침은 솔로몬이 이 잠언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의 가르침은 단순히 삶을 통한 지혜를 소개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행동을 하도록 가르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주를 두려워하는 것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단순히 그분을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경외”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존경을 바탕으로 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바로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잠1:7). 다시 말하면 모든 지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서부터 시작되며, 이에서 벗어난 것은 참 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지혜의 시작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잠9:10),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주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믿음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믿음의 삶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도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장수하는 복을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0:27). 물론 이것을 구원받는 자, 즉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에게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장수하는 복을 더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게 됨으로 악을 떠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16:6). 이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욥34:12). 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8:13). 참 된 믿음의 삶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훈계를 들으며 법을 버리지 말라
부모에 대한 교훈은 성경 안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십계명중 다섯 번째 계명이면서 이웃을 향한 계명 중 첫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출20:12).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게 되었을 때, 형통하며 장수하게 될 것이고(엡6:1-3), 또한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골3:20).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어머니의 법을 버리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되새기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령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순간부터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엡3:15).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입니다(창2:24). 그 가정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 아래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르치고, 자녀들은 장성하여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질서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그것은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매우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아버지가 되시고 친히 하나님의 말슴인 성경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명령하십니다. 순종의 훈련이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리고 계시며, 주님의 교회 안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그 안에서 풍성한 생애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 아들을 향한 훈계(잠1:10-19)
여기에서는 아들에게 훈계를 들어야 할 것을 말하면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삶은 어떤 것이며, 악한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 혹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줌으로서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말로 가르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될 상황들을 소개하면서 그 때마다 그들이 처신해야 할 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세상을 사는데 매우 필요한 내용입니다.
실제로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게 될 다양한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책을 통하여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 성경만으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생을 두고,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려 합니다. 실제로 가르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입니다. 잠언은 바로 이러한 지혜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 속에는 단순히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극복할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1) 죄인들이 너를 꾈지라도
난폭한 사람,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죄인의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을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하려 합니다(16:9).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은밀한 곳에서 죄 없는 자를 죽이고(시10:8), 몰래 올가미를 놓기 위해 대화하며(시64:5), 덫을 놓아 사람들을 잡으려 합니다(렘5:26).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러한 자들이 꾈지라도 동의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1:10). 그들은 언제나 믿는 자들을 산 채로 삼키려 하는 자들입니다(1:12). 다윗도 사람들이 자신을 삼키려 하고 날마다 싸우며 학대한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시56:1).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 계속 될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우리를 향한 싸움은 매우 치열한 것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그들의 발은 악을 향해 달려가며 피를 흘리려고 서두르느니라”(1: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대처는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천사들을 통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즉 이 싸움은 우리가 감당할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라면 악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은 “악의 모든 모양을 삼가라”(살전5:22)고 명령합니다. 믿는 자들은 죄에 대하여 결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쉽게 부자가 되는 유혹
모든 세대에 걸쳐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들이 가장 유혹에 빠지기 쉬운 우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재물에 대하여 “맘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심으로 사람들이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마6:2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버는 수단은 중요하지 않으며,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자녀)들은 재물을 얻는 방법 역시 매우 정당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얻으라고 유혹한다면 당연히 그들로부터 스스로 분리되어야 합니다. “네 발을 금하여 그들의 행로에서 떠나라”(1:15)는 말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죄로 인하여 온 결과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3:19). 이러한 명령은 결코 취소된 적이 없습니다. 일부 기복신앙을 가진 자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고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바울은 아담의 사건을 회상하며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결론적으로 “조용히 일하고 자기 빵을 먹을지니라”(살후3:12)고 말합니다. 재물을 얻는 것은 많은 노력을 통하여 수고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믿는 자들을 구덩이에 몰아넣으려는 악한 자들임을 기억하십시오.
3. 지혜가 밖에서 외치며(잠1:20-33)
앞에서 악한 자들, 즉 마귀에 속해 있는 자들로부터 유혹을 피할 것에 대한 교훈을 했다면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에 대하여 마치 살아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지혜는 바로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눅7:35). 이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오늘날 믿는 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크게 편견에 빠져 어리석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남들을 조롱하는 거만함, 그리고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미련한 자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의 사역을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영적 교만에 빠져 있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1) 모든 곳에서 전하라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혜가 밖에서, 거리에서, 군중이 모이는 중요한 곳과 성문 통로, 그리고 도시 안에서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결코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현장에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즐을 수 있으며, 또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공간이 어디였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곳은 성전이나, 회당, 아니면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니시는 모든 곳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이 우물가이기도 했고, 동산이기도 했으며, 광야에서 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전과 회당에서도 전하셨으며, 가정집을 방문하여 그들의 가족들에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역시 그 대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으며, 그들을 향하여 소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2)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토록 간절히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1:24-25). 그들의 미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귀를 닫은 어리석은 자들은 멸망하게 될 것이며(1:32),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안전하고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1:33).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바로 그들의 삶을 결정지어 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지혜를 무시하게 된다면 그들은 결국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의 교훈은 결국 믿는 자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고 소개하셨습니다. 그분은 성경 기록들이 곧 나에 대하여 기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5:39,46). 지혜가 말하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묵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게 된다면 그는 곧 재앙, 곧 멸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 있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안함 속에서 많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4. 결론
이미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지혜와 지식, 심지어 세상에서 형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모든 신앙의 근본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과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언제나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에 대하여 민감한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에 대하여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자세이며, 또한 사랑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