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

조회 수 2549 추천 수 0 2010.06.05 20:50:42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17-22)

 

성경 안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교훈은 이 기적이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으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AD70년경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여 그 백성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서 1948년 그들이 다시 국가를 회복할 때까지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비유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는 믿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시고, 마가복음에서는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24:32~33)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이 바로 무화과가 잎사귀를 낸 시점이라고 주장하며 예수님께서 이 때 이미 재림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이 아닌 한국인으로 재림하셔서 지금은 죽고 없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성경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쳐야 하겠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추정하여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의 상징적인 식물인 것이 틀림이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교훈을 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를 향하여 저주를 하는 순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보고 놀란 제자들에게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이런 일을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옮겨져서 바다에 빠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믿고 기도할 때에 무엇을 구하든지 모든 것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이 기적의 목적이 믿음의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삶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른 믿음의 기도를 하는 자세는 어떤 모습일까요? 바른 기도의 자세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는 목적을 하나님께 둡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기도는 언제나 자기중심으로 기도합니다.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를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바른 기도의 자세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선 무엇을 원하십니까? 오늘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기도, 그것이 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기도는 언제나 내 뜻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도의 자세는 내 뜻을 주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기도입니다. "주님 제 생각은 이렇지만 주님의 생각이 그렇지 않다면 제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의 뜻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기도는 주님의 뜻에는 관심없이 자신의 뜻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뜻을 이루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바른 기도의 자세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기도 가운데 끊임없이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구했지만 이제는 주는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원망스러운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문제가 있어서 기도를 하다가도 결국에는 나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기도는 내가 달라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 기적을 통한 또 하나의 교훈은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참으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용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11:2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동일한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주기도문을 통하여 가르쳐지기도 하였습니다(6:14-15). 용서에 관한 교훈은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게 가르쳐지고 있었던 내용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누구든지 용서할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분쟁과 다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떠나간다면 그곳에서 평화를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상대방을 비방하고, 욕하면서 그것이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정의로운 일이라면 누구든 정죄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디에도 누군가를 실족시키며, 판단하고 모욕을 주는 것에 대하여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줄지라도 인내하며,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의 모습이 주님이 보실 때 온전할까요? 그분의 신실하심을 기준으로 과연 우리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인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얼마나 놀라운 인내를 하고 계신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분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에 대하여 인내하시고 끝없는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만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 시대에서 반드시 행해야할 책임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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