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심 A

조회 수 2260 추천 수 0 2010.06.05 20:49:00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5:1-11)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환경이나 여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부르심은 다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제자 삼으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시몬 베드로의 부르심의 과정을 통하여 그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시몬을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실 때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무리를 가르치신 후 배를 띄울 것을 말씀하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실 때 시몬은 밤새도록 수고해서 잡은 것이 없었지만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을 때 잡힌 고기가 너무 많아 다른 배에 있는 사람들도 불러 두 배에 가들 채웠습니다. 모두가 놀랐고 예수님께서는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고 말씀하실 때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 부르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주님께서 먼저 가까이 가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발견되어지는 예수님 사역의 특징이 여기서도 발견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도 시몬의 부르심을 통하여 장차 이루어갈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이 교회 역시 주님이 세우실 교회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교회를 만들어 가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올바른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둘째, 호수 위에는 두 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배를 교회로 해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의해 지어진 교회(방주)만이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바다나 호수 등을 세상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신 모습과 연결하여 생각한다면(13;47-50), 호숫가에 있는 두 배는 세상 속에 있는 두 종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한 배에 예수님께서 오르셨듯이 예수님이 있는 교회와 예수님이 없는 교회로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주인이 되고, 교회의 머리가 되어 복음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교회는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사실상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교회들은 교회 내에서 많은 파당과 다툼을 일으키고 있고 물질과 성도수가 교회 평가의 기준이 된지 오래입니다. 값진 보석은 무척 귀합니다. 그래서 많은 가짜 보석들이 진열됩니다. 보통 사람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복음 안에 있는 건전한(보석같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흉내만 낸(가짜 보석)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거짓 교회가 참 인 것처럼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증거하고 있는 주된 내용이 무엇입니까? 축복, 병 고침, 만사형통, 적극적(긍정적)사고 등 오히려 복음이 금기시하고 있는 철학적 사고입니다(2:8). 이러한 것들을 영혼을 노략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는 교리입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주인 삼는(우리의 자리를 내어주는) 교회야말로 참된 교회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기적에 앞서서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배에 오르신 예수님은 무리를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3). 이는 예수님 사역의 기본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일보다 가르침을 우선합니다. 충분한 깨달음과 아는 지식을 통하여 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도록 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통한 거듭남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스마엘이고, 또 하나는 이삭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종이었던 하갈의 아들이었고, 이삭은 본처였던 사라의 아이였습니다. 바울은 이스마엘이 육체를 따라 났고, 이삭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다고 말합니다. 결국 육체를 따라 난자는 유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4:21-31)

 

"계집 종에게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4:23)"

 

육체로부터 난자는 결국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소욕을 따라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육신의 안위와 부요함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가고, 그 일들을 위해 뼈를 깎는 자기 희생을 하고 있는 교인들을 봅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상급없는 지옥 자식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가 은혜를 힘입어 이삭을 낳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거듭나고 자녀된 삶을 산다면 그는 약 속의 유업을 보장받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사라와 하갈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라는 약속을 받았다는 것과 하갈은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슴을 가르치고 배워야만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10:17)"

 

시몬 베드로가 그물을 깊은데다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5). 그리고 그 말씀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말씀을 듣는 일보다 우선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많은 선생들이 교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다보면 믿음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헌금, 봉사, 구제, 전도, 심방, 의식 등을 먼저 배웁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가지 않아 실족하고 마는 것을 봅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나는 구원을 얻은 자인가? 내가 오늘 죽는다면 과연 천국에 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결국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이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약속을 받아야만 합니다. 내 죄가 사해졌는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인가? 나는 과연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자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들음으로 분명한 믿음(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믿음으로부터 즉 약속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해지는 헌금, 봉사, 구제, 전도, 심방이야말로 의미가 있고, 상급이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약속을 받고 세상을 향해 그물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넷째, 예수님은 소득 없는 인생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아간 배는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는 배였습니다. 어부들은 좌절과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보장받지 못한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부들의 사이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믿음 있는 새로운 항해를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실패와 좌절과 낙심 중에서 예수님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한 번도 마음이 곤고해 본 적이 없는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무들은 밤새 수고했고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하실 때 순종할 수 있는 낮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낮아진 자를 찾아오십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물이 동할 때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낫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병자는 38년 동안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동할 때에 아무도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육신의 질병도 고통이었겠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독감과 소외감은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지금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낫게 되었고,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5:2-8). 예수님은 지금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찾아가시는 대상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즉 세상에서 소득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깊은 곳에서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는 그물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으로 가겠다는 베드로의 말은 곧 내 생각으로는 깊은 곳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순종하겠다는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고기가 잡힐 수 있는 얕은 곳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림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깊은 곳은 바로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상대적으로 얕은 곳은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잠재해 있는 육 적인 곳입니다.

 

주님의 생각과 명령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합니다. 주님의 일에 우리의 생각을 포함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베드로는 세 번 부인을 했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바울도 자신의 의지와 생각으로 인해 실패를 경험했던 자들입니다. 이 시대에도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주님을 위한다고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복음을 가진 자들이 많습니다. 깊은 곳으로 간 시몬 베드로와 동무들은 이미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포기하고 그물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깊은 곳으로 인도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포기된 채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깊은 곳에서는 육지로 헤엄쳐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세상으로 향하고자 하는 육신적인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진정 성령 안에서 사는 자라면 오직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것이며, 그의 자녀답게 살아갈 것입니다(요일 4:6). 하나님의 자녀가 풍성함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깊은 곳입니다. 제 아무리 수고를 하여도 얕은 곳(육적인 곳)에서는 결실 할 수 없습니다. 깊은 곳으로 항해를 계속하십시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배 위에 예수님께서 반드시 승선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여섯째,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제자가 될 것을 청했을 때 예수님은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대 교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바나바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반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의 얼마를 감추었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전적인 포기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배와 그물 그리고 바다를 뒤에 두고 예수님을 따르므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의 길을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자기 포기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모든 요소들은 우리의 생각과 삶 속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삶의 터전 역시 바뀌어져야 합니다. 베드로와 동무들이 그들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듯이 우리를 이 땅에서의 소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가난한 마음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좇는 참된 제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절대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영혼에 찾아 오셨고 문제를 해결하시며,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따를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의 과제가 있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더 깊은 곳으로 항해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삶으로 인도 받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삶으로 인도 받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삶의 모양이 있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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