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입에서 발견한 동전

조회 수 2715 추천 수 0 2010.06.05 18:44:21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공세 돈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희 선생님은 공세를 내지 아니하시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매 예수님께서 그보다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땅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공세를 걷느냐? 자기 자식들에게서냐, 타인들에게서냐? 하시니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타인들에게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다면 자식들은 면제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실족시킬까 염려하노니 너는 바다에 가서 낚시 바늘을 던져 처음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으라. 네가 그것의 입을 열면 돈 하나를 발견하리니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해 그들에게 주라, 하시니라. (마17:24~27)

당시의 로마는 그들의 식민지에서 자치적으로 거두는 어떠한 세금도 허용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에게만은 성전세를 거두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돈을 거두어 성전을 관리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드는 모든 경비들을 충당했습니다. 당시 20세에서 50세까지의 나이에 해당되는 모든 남자들은 이 세금이 부과되었으며,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반 세겔의 성전세를 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었던 화폐는 세 종류였는데, 공식적으로는 로마에서 발행한 “데나리온”이었고, 헬라의 화폐였던 “드라크마”와 유대인들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세겔”이 있었습니다. 돈의 가치는 데나리온과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액수였고, 세겔은 약 4배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세를 반 세겔을 드렸는데, 이는 곧 약 두 데나리온에 해당되는 액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성전세를 드릴 때에 반드시 세겔로 드렸는데, 그 이유는 데나리온에는 카이사의 초상이, 드라크마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자신들이 로마의 지배아래 있지만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이 세금을 받는 자들이 와서 베드로에게 “너희 선생님은 공세를 내지 아니하느냐?”하고 묻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께서는 공세, 즉 성전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즉시로 그들에게 ”내신다“라고 대답을 하고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의 대답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세금 내신 것을 보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급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서 대답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신중하지 못한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땅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공세를 걷느냐? 자기 자식들에게서냐, 타인들에게서냐?”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타인들에게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렇다면 자식들은 면제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공세, 즉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에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했던 것은 그분을 따르는 자, 즉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한 그분의 통치를 받게 되며,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추측과 고정관념에 기대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공세, 즉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신분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가르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핵심은 따로 있었습니다. 분명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실족시킬까 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명분보다는 실족을 더욱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은 믿는 자들 사이에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유대인으로, 때로는 이방인으로, 때로는 부요하게, 때로는 가난하게 자신의 처지를 바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정작 할례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앞에서는 할례를 받도록 가르쳤습니다. 또한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강요하지 말도록 요구합니다. 어찌보면 그의 행동은 우유부단하면서도 원칙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원칙은 법의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들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원칙보다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바다에 가서 낚시 바늘을 던져 처음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으라. 네가 그것의 입을 열면 돈 하나를 발견하리니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해 그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을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고 그 입에서 동전을 꺼내도록 하는 기적을 보이십니다. 그 일로 인하여 제자들은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하는 비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오해받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경우들을 목격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면서도, 또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려 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투쟁하려 하고, 그들은 이 투쟁을 마치 순교와 연관 지어 사람들을 독려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속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세상에 대항해 싸우도록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을 보고 실족하지 않도록 그들의 권리를 충분히 이행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 때로는 정당한 권리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면서도 친히 모범을 보이시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나 주장을 찾아서 그것을 충분히 누리는 자들에 대하여 지혜로운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원칙이 결코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미련하고, 연약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며,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도 하고, 또한 실족하여 멸망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실족하게 만드는 자는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눅17:2)고 말씀하십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더욱 수고할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기다릴 줄 알고, 꾸준히 기도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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