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모든 것에는 때(시기)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운영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의 인생 속에서 슬픔과 기쁨, 출생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모두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시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질서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생은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인생의 가치는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열매를 맺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들에게 인생의 모든 곳에서 섭리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알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모든 것에 시기와 때가 있다(3:1-10)
우리의 인생은 매우 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마지막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에서 무슨 유익을 얻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랑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자가 이미 고백한 바와 같이 그 모든 것들조차도 헛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사 그 안에서 단련 받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10)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단련 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이 주는 수많은 고난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사랑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제한된 시간 안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태어난 이후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들을 얻기도 하지만 잃기도 할 것이며, 웃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애곡하는 상황들을 맞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라는 말씀과 같이 정해진 원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며, 이처럼 제한된 인생을 사는 자들이 결코 인생을 허비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엡5:16)고 말합니다. 또한 “밖에 있는 자들을 향해서는 시간을 되찾으며 지혜롭게 걸으라”(골4:5)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시간에 대하여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순간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일하는 자의 유익
전도자는 “일하는 자가 자기가 수고하는 것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9)라고 질문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도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단련 받게 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최종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수많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훈련 받고, 더욱 성숙한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하는 자의 자세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자가 만일 이 땅에서 얻게 될 영광을 위해서 수고하게 된다면 그는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결국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장차 자신들이 만나게 될 그분을 생각하고, 또한 그분으로부터 주어질 보상을 생각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일하는 자가 목적도 없이 일하게 된다면 그는 곧 지치게 될 것이고, 또한 그가 많은 것을 얻게 될지라도 만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잘 못된 목적을 위해 수고하는 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그는 일의 수고가 끝난 뒤에는 더욱 큰 절망을 하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이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스스로 자신을 단련시켜 더욱 성숙한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합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며 살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3:11-15)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특히 죽음이라는 기한을 두게 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제한된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제한된 시간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닥칠 죽음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하기만을 소망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 필요가 있으며,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또한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서 많은 일들을 행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안고 사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선물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창조를 비롯한 모든 섭리들에 대한 비밀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정하여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11). 그렇습니다. 그분의 섭리에 대한 비밀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두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에 의해 세뇌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하고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려 합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현혹당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양심 안에서 그분의 일하심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는 여전히 마귀의 지배 아래 놓여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의 모든 수고로 인한 좋은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13)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자기의 모든 수고”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수고하지 않고 누리는 것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 더욱 많은 고민과 갈등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수고가 있고, 그것을 통해 얻어질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단순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원칙을 벗어나서 말한다면 그들은 분명히 속이는 자입니다. 진정한 행복,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기의 모든 수고를 통해 그곳에서 얻어지는 기쁨에 있습니다.
2) 지금 있는 것들
전도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순환되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심지어 그분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더하거나 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합니다(14). 그리고 “지금까지 있던 것이 지금 있으며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었나니”(15)라고 말합니다.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들은 결코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이며, 미래에 있어질 것들도 사람들은 신비롭게 보겠지만 여전히 과거로부터 있어왔던 것들입니다.
이미 전도자는 앞에서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도다”(1:9)고 선언했습니다. 사람들은 새 것들을 찾아다니지만 어느 곳에서도 새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며, 또한 지금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발명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을 살면서 그분께서 만드신 세상 안에서 그분이 만드신 것들을 발견해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있으며, 또한 이 세상이 심판을 당할 때까지 모두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분과 함께 통치하게 될 그 날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재판하는 곳(3:16-22)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불공정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불공정함에 대하여 “내가 해 아래에서 재판하는 곳을 보았는데 거기에도 그 사악함이 있고 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그 불법이 있도다”(16)라고 말합니다. 의로움을 이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재판에서조차 불법이 있는 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완전한 심판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심판을 우리에게 보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1) 하나님의 심판
완전한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모든 실체들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18).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드러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황만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 안에 있는 마음을 기준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16: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주님을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결코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누구에게든지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정죄의 권한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심판의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심판은 많은 실수를 낳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죄하는 일을 멈추고,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수 맺는 일을 하지말고, 모든 심판을 주님께 맡기는 지혜로움이 있어야겠습니다.
2) 사람의 영과 짐승의 영
많은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짐승(동물)들에게 영이 있는지의 문제를 두고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여기에서 말씀하는 영은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18). 전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짐승에게 영이 있는지의 여부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겠지만 배반하고 거절하는 짐승과 같은 이들은 모두 땅으로 내려가게 될 것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또 한 가지는 “모두가 흙에서 나와 모두가 다시 흙으로”(3:20)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그들 자신의 마음, 즉 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몸은 그 수명이 다하게 될 때에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며, 영혼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심판 날에 불호수에 던져져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땅을 사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혼을 구원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 땅을 사는 자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수명을 다했을 때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