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아삽의 시(시73-89편)

조회 수 2273 추천 수 0 2012.04.19 10:52:36


시편 제3권은 아삽의 시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쓰여지는 주요 단어는 ‘성소“인데 이는 제3권의 특징이 모세오경의 레위기와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3권에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중심으로 다뤄지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매우 모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매우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시73-75편)


아삽의 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공감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을 비교하면서 그 사이에서 오는 모순들을 지적하며 그 속에서 갈등 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하여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는데 “내가 사악한 자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기 때문이로다”(73:3)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로되 세상에서 형통하며 재물을 불리는도다”(73:12)라는 말로서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결코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행복하지만은 낳다는 것을 경고하고 잇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많은 환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은 여전히 많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도 역시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비밀과도 같은 것입니다.


1)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편 기자는 왜 믿지 않는 자들이 형통하며, 믿는 자들은 고통 중에 잇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소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73:17). 그가 깨달았던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들의 멸망을 재촉합니다. 그는 “오 하나님이여, 대적이 어느 때까지 모욕하리이까?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모독하리이까?”(74:10)라고 소리치며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원수들, 즉 믿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확신하기를 “사악한 자의 모든 뿔을 꺾으리로다. 그러나 의로운 자의 뿔들은 높이 들리리로다”(75:8)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성소 안, 즉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갔을 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주님 밖, 즉 그분의 곁을 떠나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을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주님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곧 멸망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자이며, 은혜를 입은 자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시나니


시편기자는 악인에게는 형벌을, 의인에게는 영원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 즉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인생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평가하고 심판하시는 이는 오직 한 분 재판장이신 하나님뿐입니다. 시편기자는 그분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시나니 그분께서 한 사람을 낮추시고 다른 사람을 높이시느니라”(75:7)고 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는 믿는 자들이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에 대해서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면 이 땅에서의 삶은 매우 절망적인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찬양을 하고 감사를 하는 이유는 바로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땅에서 악한 일들을 하고도 부자로 산 자가 하늘에서도 여전히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비록 가난하지만 선한 양심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 잇는 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요? 주님은 그러한 불공평한 인생을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비록 힘겹더라도 신실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시76-78편)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깊이 살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회상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일깨우려 하고 있습니다(78:2). 그 가르침은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편은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 누가 우리 하나님같이 위대하신 하나님이니이까?”(77:13)라는 말로서 사람들이 따라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성소는 오늘날 주님의 교회를 대표하는 주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금 촛대와 떡상, 그리고 번제단이 있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즉 구원을 노래하고, 기도하며, 주 안에서 교제하는 공간으로서의 교회와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교회 안에서 나누는 모든 일들이 바로 성소 안에서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그분의 법 안에서 걷기를 거절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많은 이적들을 보고서도 그것들을 잊은채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그분의 법 안에서 걷기를 거절하였습니다(78:10-11).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마땅히 심판의 대상이며, 결국에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으며, 지속적으로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일깨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 이상 그러한 어리석음을 담습하지 않기를 바라시고 계셨습니다(78:1-8). 주님의 계속된 사랑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내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많은 죄가운데 노출되어 있으며, 때로는 심각한 죄인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셨고, 결국에는 그분의 왕국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어떠한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2) 성소를 지으심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또한 성소를 자신이 영원히 굳게 세우신 땅같이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78:69). 즉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과 더불어 함께 영원히 사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매우 큰 소망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은 장차 믿는 자들이 함께할 처소를 마련하고 계십니다(요14:2). 그리고 이 땅에는 그분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두고 계십니다(행20:28). 모든 믿는 자들은 그분께서 마련하신 처소 안에 거하게 될 때 안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처소를 떠나게 된다면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마귀에 의해서 이미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방주 아래서만 심판을 피할 수 잇듯이 주님의 처소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3. 포도나무 한 그루(시79-89편)


여기서 말하는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타락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셨고, 그들은 이 일들을 위해서 회개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있었으며, 오히려 더욱 삼각한 죄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1) 포도나무인 이스라엘


주님께서는 포도나무 한 그루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이교도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80:8). 그런데 이 포도나무는 황폐케 되었습니다(80:12). 시편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함과 그에 따르는 비극적인 상황들을 매우 현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79:17-18). 그들이 죄 아래 놓여 있을 때에 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편 기자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수 잇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잇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죄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에 대하여 회개 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죄 아래 놓여있을 때 황폐하게 되듯이 믿는 자들이 죄 아래 살아가게 될 때에 그의 인생에는 미래도 없고, 현실에서도 매우 고통스러운 삶만 있을 뿐입니다.


2) 주의 진노를 그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진노를 그쳐 줄 것을 간구합니다(85:4-7). 그들은 고통 중에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으며, 주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을 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각종 재앙들, 즉 주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79:5-12). 그들의 이러한 회개가 잇은 후에는 언제나 주님을 향한 찬양이 잇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회개한 후에 주님으로부터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찬양이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함이 없이 찬양을 한다면 그것은 허공을 향해 외치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찬양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의 죄를 알고 그것을 고백하며,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향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찬양의 뒤에 기쁘고 행복한 삶이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주님의 진노를 멈추고 진정한 찬양이 될 수 있는 것은 회개한 자의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4. 결론


아삽의 시에서는 세상에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불공평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믿는 자들이 실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다름이 아닌 그들에게 다가 올 세상이 잇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들이 노래하는 이유도, 그들이 고난과 조롱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절망적인 순간이 오더라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처소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소망 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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