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눅16:19-31)

조회 수 905 추천 수 0 2014.08.04 14:24:13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비유로 분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비유들이 실제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 비유가 자칫 상징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면 많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는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의 대화를 보면서 자칫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연옥, 즉 낙원과 지옥으로 가기 전의 대기장소가 있는 것처럼 포장이 된다면 교리상의 엄청난 혼란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이 비유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을 대하면서 단순히 부자와 거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비유의 말씀을 예로 들며 부자는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 세상의 부자들이 천국에 갈 수 없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소외되고 낮은 자들의 편입니다.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에게 복음이 필요하고 결국에는 그들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의 많고 적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부자일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것을 대신 맡은 청지기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가난한 자입니다. 반대로 가난할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진 자가 있다면 그는 오히려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즉 빈부의 차이는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눈에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난하게 할 필요가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거지가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에 옮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천사들은 성도들의 삶을 보호하고 지키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수명을 다할 때 친히 인도할 것입니다(행27:23, 히1:14). 어떤 이들은 천사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지만 천사는 오히려 믿는 우리를 섬기고, 때로는 우리를 대신하여 영적 싸움을 대신하는 존재라는 점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주로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가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자손이므로 반드시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긍휼을 베풀어 줄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하는 내용은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구한 내용으로 봐서는 그는 더 이상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결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 문제를 더 이상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자신의 다섯 형제, 즉 가족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특히 그는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이방종교, 특히 무속신앙을 가진 자들은 죽은 자들이 다시 나타나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귀는 이러한 생각들을 교묘히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입니다. 이미 사울 왕이 무당을 통해 사무엘을 불렀던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마도 부자는 사무엘처럼 나사로를 다시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말을 명백합니다. 결코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도 없으며, 오직 그들에게 주어진 모세와 선지자, 즉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에 길에 이르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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