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겨자씨

조회 수 2898 추천 수 0 2010.06.05 18:04:30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태복음 13:31-32)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겨자씨가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이 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풀, 혹은 나물과 같은 것이어서 크게 자라야 2~3 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깃들도록 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이 문제에 관하여 많은 논쟁이 있지만 우리가 그러한 관점에 관하여 긴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은 이 말씀이 천국을 설명하시기 위한 특별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말씀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복음은 매우 미약한 것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결실을 안겨다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겨자씨가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교회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겨자씨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을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결코 긍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앞서 가라지의 비유와 뒤에 누룩의 비유를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마귀의 세력들이 천국에 속한 백성들 사이에서 어떻게 성장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유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한 견해들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역교회들이 순수한 교회를 세우기 원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은 부패되어 왔고, 오히려 순수한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타락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마귀는 마치 겨자씨와 같이 작은 모습으로 다가와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안주하고, 마치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며, 죄 가운데 살고 있더라도 전혀 감각이 없는 상태로 살아갑니다. 처음부터 마귀는 이러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삼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어왔습니다. 우리 안에 거짓된 진리가 숨어들어오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복음의 관점에서 한 알의 겨자씨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언제 가치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자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가치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것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라게 되어 커다란 결실을 안겨다 줍니다. 천국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복음이 교회 안에서나 세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우리의 눈앞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인내해야만 합니다. 또한 개인의 삶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복음은 언제나 작게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교회당과 웅장한 교회 음악에는 심취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복음은 매우 작게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서 사람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바로 능력 있는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진정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집사였지만 삶을 통하여 실제적인 결과를 얻은 자는 아닙니다. 그는 분명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설교를 통하여 확실한 증거를 한 자였지만 결국 유대인들의 손에 의하여 돌아 맞아 죽음을 맞이했던 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인생이 아무런 결실도 없이 수고만 하고 떠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역사로 볼 때는 매우 작은 씨와 같이 미약해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그는 죽으면서 한 사람의 마음에 복음의 씨를 뿌렸다는 점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에 자리에 있었던 자는 후에 바울이 된 사울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했고, 또한 이 광경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나고, 복음전도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때에는 그의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스데반의 증거와 죽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십시오.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분명한 복음을 전합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그는 수십 번 매를 맞고,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마다 바울 안에서는 스데반이 죽음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그렸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작은 씨는 결국 바울 안에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사를 말할 때 주로 가톨릭 교회와 같은 거대한 교회당과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자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에 의해서 오늘날의 기독교회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한 주님의 교회는 오히려 그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아 왔으며, 언제나 소수의 무리를 이루고 그들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습니다. 마귀는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서 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죽이고, 성경을 불태우고, 모든 핍박을 가했지만 복음은 작은 씨가 되어 모든 나라들에 뿌려짐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기독교회 안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교회연합운동에 참여하고, 교회의 대형화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우는데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노력은 결국 복음의 위력을 감소시키고, 오히려 바른 복음을 핍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 속에서 성경대로 가르치고, 또한 그 안에서 사는 자들은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이들은 작은 씨가 되어 부패되고 타락의 길로 가는 교회와 죄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 시기의 대상이면서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등불의 역할을 다해왔던 자들입니다. 그 열매는 오늘날 또 다른 모습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어가게 됩니다.

 

복음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작고, 약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매우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우리의 삶에 풍성한 결실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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