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빚진 자(용서하지 않는 자의 비극)

조회 수 1898 추천 수 0 2010.06.05 18:00:53


본문: 마태복음 182335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하여 용서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도덕적인 권면으로 끝나는 교훈이 아니라,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진리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18:21)라는 질문에 대해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18:22)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 비유의 목적이 단순히 남을 이해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용서와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우리의 용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이 비유의 임금은 하나님을, 그리고 그 앞에 결산을 위해 불려 나오는 종은 바로 우리,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을 상징합니다. 종은 만 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있었고, 그것을 도저히 갚을 수 없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당시 일반 노동자의 수입을 기준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크기이며, 곧 우리의 죄가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 상태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모두 만 달란트(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를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은 죄의 총합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로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일만 달란트의 빚을 전액 탕감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값없이, 은혜로, 전적인 주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는 용서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큰 은혜를 받은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을 때, 그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목을 잡고, 갚으라고 독촉하고, 심지어 감옥에 가둡니다. 백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을 기준으로 약 세 달치 노동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상대가 잘못한 일도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탕감받은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 종의 모습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린 자, 자신이 어떤 죄인이었는지를 잊어버린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악한 종이라 부르시며, 다시 감옥에 가두어버리셨습니다. “악한 종아, 내가 네게 빌기에 너의 모든 빚을 탕감하여 주었거늘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18:3233)

 

그리고 주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8:35)

 

우리는 이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용서를 단지 선택적인 덕목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복음의 열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32절은 이렇게 명확히 말씀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는 내가 기준을 세우고,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기준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기준으로 용서할지를 결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용서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213절은 경고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용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곧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거절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정죄하며 마음에 미움을 품고 있는 동안, 나 역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그 정죄를 가지고 서게 됩니다. 그러나 긍휼을 베푸는 자는 심판의 날에 긍휼을 입게 되고, 은혜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골로새서 313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다툼한 것처럼, 신실한 자들끼리도 때론 오해하고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후입니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 복음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근거는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1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은 반드시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위선이 되고, 사랑 없는 용서는 감정 없는 행동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용서는 회복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능력이 됩니다.

 

오늘 이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탕감받은 자입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전액 탕감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을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반드시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며, 복음의 핵심이며, 천국 백성의 삶의 방식입니다.

 

내 마음에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을 떠올리며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진 상처와 억울함을 주님께 아뢰고, 그 사람을 놓아주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로, 우리도 용서하며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며,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예배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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