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순종

조회 수 3037 추천 수 0 2011.06.11 09:05:13

많은 사람들은 순종(obey)과 복종(subject)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서 믿음의 삶에 큰 혼란을 겪는 경우들을 봅니다. 물론 행동에 있어서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종이 권위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면 순종은 자원하여 굴복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초기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요구될 때에도 역시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매우 강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대부분 순종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은 자진하여 권위자의 말에 굴복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바로 이러한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진하여 따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순종하는 모습을 통하여 어떠한 자세로 순종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순종에는 조건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조건도 요구도 없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이해를 뛰어 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약속을 받고 출발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크게 하고 땅의 모든 민족이 그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창12:1-3). 그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진정한 순종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그 어디에서도 그의 믿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충격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그것은 100세에 얻은 아들이었던 이삭을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창22:1-2). 매우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정알 얹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 헌물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해 주신 모리아 땅으로 향합니다. 그는 여기에서 어떠한 대꾸도 없으며, 왜 그러한 명령을 내리시는지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명령에 따라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이 다만 주님의 명령을 몸으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반응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에 대하여 “이제야 비로소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십니다(창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았고 명령을 따라 행동했지만 그의 믿음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조건 없는 순종을 했을 때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조건과 이유가 있는 순종만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그의 믿음을 통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조건 없이 순종하는 삶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길을 걸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정한 순종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순종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것이다.

우리가 순종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주님의 명령이 우리 자신을 매우 곤혹스럽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인다는 것이 어찌 가당한 명령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시기도 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유대의 멸망을 예언했던 예레미야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유대의 멸망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유대는 바로 예레미야의 모국입니다. 그는 지금 사람들로부터 매국노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족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전하는 자들은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로 현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스마야라고 하는 자가 바로 그러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말하면서 백성들을 현혹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그의 씨까지도 모두 심판에 처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렘29:31-32).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설교나 가르침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으로 더욱 가까이 가게 된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설교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을 말하도록 명령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구원이 오직 유대인에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환상 중에 하늘에서 부정한 것이 담겨 있는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와 “잡아 먹으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고낼료의 집으로부터 온 사람들의 방문을 받은 이후에 그 의미를 알고 즉각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행10:1-48). 하나님은 유대인들만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던 베드로를 통해서 이방인들을 구원으로 초대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머리로 이해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주님의 명령이며 순종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황당하거나 이해될 수 없는 명령을 함으로서 우리를 당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명령이라면 당연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3. 진정한 순종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순종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임하시게 될 것이며(행1:8), 우리는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를 봅시다. 그는 본래 아시아로 가기 위해서 안디옥 교회를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머문 곳은 마케도니아로 넘어가는 도시 드로아였고, 결국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 후에 그는 아시아 전도를 뒤로 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마케도니아로 건너갑니다(행16:6-10). 성령님은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줍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주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으며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순종의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4. 결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그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들에 대하여 우리의 상식과 지식들로 이해하고 순종하려 한다면 그는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도 돌려대라”“은밀하게 구제하라”“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와 같은 명령들을 어떻게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신학적인 접근이나 영적인 논리로 이해하려 한다면 그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주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최악의 상황을 요구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명령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곧 우리의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주님으로부터 칭찬 듣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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