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겸손이라는 말은 매우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겸손함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알게 된다면 결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에 대하여 표현하시기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11:29). 그것은 예수님의 성품이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과제입니다(빌3:20).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온유와 겸손입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겸손함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현세대에 겸손함에 대한 교훈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겸손함을 배움으로서 더욱 풍성한 삶을 경험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겸손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라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20:19)
주님을 섬기는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것입니까? 많은 이들은 경배를 위한 많은 자세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대부분은 아마도 헌신에 대한 것들을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외형적으로는 많은 헌금을 하고, 찬양을 드리며, 보다 경건한 자세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실제로 경배를 하는 자리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고 주님을 높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겸손한 자는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자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려는 자세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함이 없이는 주님을 온전하게 섬길 수 없습니다. 기복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주장만을 주님께 요구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때로는 누가 하나님인지를 착각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께서 비록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이 땅에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과 멸시를 당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요구에 대하여 들어주셔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어떠한 사실을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이 없다면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을 하실 수도 없으며, 또한 우리의 요구들에 대하여 응답하실 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잇어야만 합니다.
2. 겸손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그렇다면 겸손한 자가 보일 수 있는 행동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남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이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하여 건강에 자신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지식, 또는 물질적으로 훨씬 나은 삶을 산다고 자신할 수 잇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객관적인 기준에서 인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자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칫 교만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백성을 미워하심에 대하여 성경의 많은 곳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높아지는 자는 하나님 앞에 결코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각종 교육 자료들을 통하여 자녀를 가르칠 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라는 권고의 말을 듣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때로는 옳은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릴 때부터 낮아지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낮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코 섬기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려는 자세를 갖지 못한 자가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만일 섬기는 자세가 되어 있지도 않은 자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선적인 것입니다. 이 섬김을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낮아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낮아짐이 없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3.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우리는 구약 성경 안에서 겸손함으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경우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왕상21:29,대하12:7,삼하16:4,대하12:12). 겸손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누구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경계하지만 낮은 자들에게는 굳이 해롭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 낮아진 자가 세상으로부터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겸손한 자들을 이용하려 할 것이며,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결코 여유 있는 삶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은혜는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잠3:34). 반대로 진정 겸손한 삶을 추구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겸손하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자세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는 겸손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겸손한 사람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착하고 많은 이들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 자들이지만 은혜를 구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인 손해를 입고서는 성공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겸손에 대하여 말하면서 반드시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은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무장했다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그에게 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4. 겸손한 자는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우리는 성경 안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한 사람을 말하라고 한다면 요셉의 생애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비록 어릴 적에 형들에 의해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갔지만 나중에는 이집트의 모든 국고를 맡은 총리가 된 자입니다. 그는 종이 되었고, 심지어는 죄수의 몸이 되어 감옥에 갇힌 자였지만 결국에는 최고의 자리에 앉은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세상에서 높임을 받게 되는 비결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요셉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그에게서 많은 이유들을 설명하려 하지만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을 때 그는 순간적으로 넘어 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결국에는 그 유혹을 피해 도망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일의 결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은 결국 그를 왕궁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겸손이 사람들 앞에 교양이 있는 행동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교양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과 교양은 다른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않은 사람들도 교양이 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악한 지도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스스로 낮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매우 위험한 자들입니다. 생명을 조금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백성 위에 군림함으로서 사람들을 곤경에 빠지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그러한 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가령 나봇의 포도원을 가로채려 했던 아합 왕이나 다윗을 죽이기 위해 따라다녔던 사울 왕과 같은 이들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높임을 받았던 자들은 충분히 낮아짐을 경험했던 자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남을 당하였고, 아둘람 굴에서 비참한 시간을 보냈으며, 오랜 시간동안을 나그네와 같이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의 낮아짐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의해 왕이 될 수 있게 되는 힘이 되었고, 후에는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않됩니다. 오히려 낮아짐, 즉 겸손함으로 자신을 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낮아진 자들을 높이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서로 높아지겠다고 애를 쓰지만 그들의 인생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높아지려다가 낮아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결코 세상의 사람들과 같이 어리석은 결과를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5. 꾸며낸 겸손으로 속이는 자들이 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골2:18)
겸손을 꾸밀 수 있는 것입니까? 예! 꾸밀 수 있습니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도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철학과 각종 교양과 관련된 것을 공부함으로서 겸손하게 보일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게 하는 방법과, 또한 자신을 스스로 잘 관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는 진정한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겸손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꾸며낸 겸손에 대하여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보상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칫 다른 이들의 꾸며낸 겸손으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을 꾸미는 자의 모습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위선적인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외식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로부터는 어떠한 보상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러한 외식에 빠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종교적으로 보이며, 각종 의식에 대하여 열심을 보이며, 구제와 봉사에 열심을 보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이 때로는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오히려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실행하기에 앞서서 먼저 섬기려는 자세가 있는지를 돌보아야만 합니다. 섬김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섬김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베푸는 친절에 대하애서도 한 번 정도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순수함으로 접근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 자신의 명예나 만족 때문인지를 살펴보고 피차에 겸손한 마음으로 교제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서로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장차 받게 될 보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외식적인 모습으로 겸손하게 보이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6.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겸손)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시9:12)
주님은 겸손한 자에 대하여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시138:6). 심지어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욥22:29). 주님은 그들에 대하여 언제나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소원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시10:17). 주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사57:15). 다윗도 기도할 때에 자신이 겸손한 자임을 고백하며 응답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겸손)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시10:12)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갖습니다. 물론 우리는 많은 방법들에 대하여 들을 수 있습니다. 간절히 구할 것을 요구받기도 하고, 때로는 금식하며 기도하라는 말을 듣기도 하며, 항상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기도 응답에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외적 상황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과 기도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먼저는 성경이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당연한 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낮추지 않은 자에 대하여 응답을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구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본래 주님 앞에 나갈 수조차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로 주님께 나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응답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나아갈 수 잇다는 자체가 엄청난 은혜라고 할 수 잇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치 주님이 자신의 디도에 대하여 응답하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무례하고 구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 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께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자그마한 응답에도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가진 자가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 대하여 주시기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응답을 원한다면 먼저 주님께 자신을 낮출 수 있기를 위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7. 겸손한 자에게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따르게 될 것이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많은 사람들이 물질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부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가 더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겸손히 행하고 주를 두려워하면 재물이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효과적으로 물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겸손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반드시 재물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명예에 앞서서 먼저 겸손함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15:33,잠18:12,잠29:23). 그것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교만한 자에게 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겸손하고 남을 섬기려고 하는 자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생명이 주어지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구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주님은 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 앞에 죄인 됨을 고백하고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된다면 생명에 이르는 길로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헛된 것을 따르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주님 앞과 사람들 앞에 낮추고 섬기는 마음을 가짐으로서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8. 결론
겸손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반드시 갖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일 겸손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된다면 그는 주님 앞에서 아무런 보상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며, 또한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주님의 마음인 겸손함으로 무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