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물질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디모데전서6:17-19)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마도 물질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물질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삶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의 소유 여부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한 나라의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도 여전히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힘쓰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비단 세상에서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영광이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모든 것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다 왕이 된 이후에도 심한 마음고생을 했던 다윗보다는 솔로몬과 같이 평생을 호화롭고 영광스러운 생애를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생애를 매우 영광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솔로몬의 생애는 그 자신이 헛되다고 표현하고, 후대의 사람들조차도 그에게 성공적인 생애를 살았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소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있으며, 또한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물질을 어떻게 형성하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까?
1. 재물을 신뢰하지 말라
재물을 소유하는 것과 신뢰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재물을 소유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신뢰한다는 것은 재물에 의지하고 기대에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재물은 우리를 결코 안전하게 인도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11:28)
재물을 신뢰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재물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이 다하는 날에는 가져갈 수도 없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재물은 우리의 손 안에 있다가도 빠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가져가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욥1:21). 만일 재물을 신뢰하는 자라면 주님께서 가져가실 때에 매우 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게 될 것입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최소한 재물에 관한 한 주님은 부자가 되기를 위해 애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애쓰는 것과 노력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애쓴다는 것은 집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노력한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는 아니더라도 물질을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착을 하게 된다면 결국 낙심하여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의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오직 주님에게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재물에 집착하는 청년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막10:17-25). 그는 분명히 주님을 선하다고 고백하며, 하늘에서 보상을 얻는 일에 관하여 물었던 자입니다. 그는 성실한 청년이었고, 또한 하나님 앞에 정직하기 위해서 힘쓰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모든 율법들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께서 “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명령 앞에서 주님에게로 오던 발걸음을 돌이켜 자기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많은 속이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재물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그러한 일들을 실천했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바나바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땅을 판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행4:36,37). 이후로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였고, 복음 전도자로서 바울과 함께 동역하는 등 많은 시간동안 주님을 위해 헌신했던 모습들을 봅니다. 그는 분명히 주님 앞에서 위대한 생애를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우리는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풍부한 소유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풍족하다고 주님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때로는 탐욕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많은 재물을 얻게 될 지라도 그것은 모래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재물은 우리의 인생에서 전혀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2.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하라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14:3-9)
마리아의 향유를 붓는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마리아의 행동은 책망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으며, 마리아의 행한 일들에 대하여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그녀가 행한 일도 말하여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행동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부은 것은 그녀의 전 재산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가격을 추산하기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것을 모두 소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차라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칭찬받을만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칭찬을 받은 이유는 장사지내는 일을 위하여 미리 와서 향유를 부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재산에 해당되는 것을 예수님을 장사지내는데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사지내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녀의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구원을 이루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을 수 있었습니다.
재물을 가치 있게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재물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좋은 기초를 쌓을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딤전6:17-19).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한다면 좋은 기초를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 없는 일에 소비한다면 그것은 결국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소유가 결코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않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3:23,6:20).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소유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주님의 것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들이 가난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결코 부자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해 온 자들입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가 곧 주님의 것이라는 생각에 맡겨진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재물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가 자기들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맡기셨다면 많은 이들을 위해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가난하더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물질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유가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마리아와 같이 주님의 필요가 있다면 언제든지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3. 주님께서는 어떤 관점으로 물질을 보시는가?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12:41-44)
우리는 물질을 드림에 있어서 그 기준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님은 많이 드린 물질이라고 해서 그들을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은 액수라도 그 드려진 상황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그것이 더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주님 앞에 물질을 드리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1,000만원의 돈을 가지고 있는데, 100만원을 헌금했다면 그는 10%를 헌금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10만원 밖에 없는데 10만원을 헌금했다면 그는 100%를 헌금한 것입니다. 비록 액수는 10만원을 드린 사람이 100만원을 헌금한 사람보다 1/10에 불과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100만원을 드린 사람이 10만원을 드린 사람보다 1/10밖에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한 과부의 칭찬을 통해서 드러난 예수님의 물질에 대한 관점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넣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물질의 액수를 비교할 때에 과부의 헌금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부에게 있어서 이 렙돈, 곧 일 고드란트는 가진 것의 전부였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매우 가난한 여자였습니다. 주님의 관점을 보십시오. 분명히 부유한 자들은 더 많이 넣었지만 주님의 눈에는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넣은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의 가진 재물은 주님의 것입니다. 본래 그들은 가진 것을 모두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이러한 상황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드리기로 했지만 얼마를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5:1-11). 그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적게 드린다고 자존심 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이 1,000만을 헌금한다고 해서 나도 가난하지만 1,000만원을 헌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가 5,000만원을 가진 자이고, 나는 50만원을 가졌다면 10만원만을 헌금해도 주님은 동일한 가치로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많은 속이는 자들이 때로는 집을 팔고, 빚을 내서라도 헌금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게 잘 못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가진 대로 받으실 것이고,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고후8:12). 주님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난은 오히려 큰 복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은 죄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기준으로 볼 때 전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난은 복입니다. 왜냐하면 소유가 많으면 주님의 관점에서 큰 것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유가 적다면 많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막10:25) 이것이 예수님께서 물질을 보는 관점입니다. 가난한 환경에 있다면 오히려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물질의 부요함은 주님께 달려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도 부자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실제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더욱 많은 부분들을 통해 주님께서 믿는 자들의 모든 물질들에 대하여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의 있고 없음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욥의 고백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시지만 가져가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재물을 주실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기도만 하면 재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주님의 일만 열심히 하면 얻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주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 질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직접 건네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8)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재물을 아무런 수고 없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은 재물이 아니라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능력을 발휘했을 때 비로소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잠28:22)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부자가 되겠다고 요행을 바란다면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막연하게 떨어지는 감을 받아먹겠다는 생각으로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재물을 얻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재물이 주님에 의해 얻어질 수 있고,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지혜롭게 얻어야만 하겠습니다.
5. 수고하여 얻으라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사람들은 기도원을 찾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시작되는 한해에는 많은 재물을 얻기를 위해 주께 구할 것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결코 예외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명백합니다. 그것은 수고한 것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128:1,2)
수고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께 정성을 드리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서 명백하게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여기서 자기 손으로 하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는 재물을 얻음에 있어서 결코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육신이 건강하다면 마땅히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명백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살후3:10)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는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너무도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가난은 일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다면 당연히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해서 우리의 필요들을 채워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정당하게 얻으라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재물이라도 그것이 정상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서라”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16:8)
주님은 재물의 가진 것을 보고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먼저 재물을 얻는 일은 정당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으려는 자들을 봅니다. 엘리사의 종이었던 게하시나, 여리고를 무너뜨린 후에 재물을 취했던 아간과 같은 자들입니다. 게하시는 나병환자가 되었고, 아간은 아골 골짜기에서 돌무덤아래 묻혀 죽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잘 못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삶들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주님은 과정이 정당한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그의 인생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후에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13:11)
우리가 매워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헛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수백억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스스로 잘 못된 인생으로 빠져들어 가는 경우들을 목격합니다. 그들이 수고 없이 얻어진 재물들에 대하여는 함부로 사용하는 것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진정한 가치는 수고하여 얻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이 아니라면 그는 재물의 가치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자들이 얼마 되지 못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빈털털이가 되는 경우들을 봅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법적으로는 정당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결코 정당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상속과 보상(상급)이 다르다는 사실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누구나 장차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보상은 다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수고한 만큼 얻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었다고 많은 것들이 얻어질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며,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가 장차 올 세상에서 상을 얻기를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21:6)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재물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조심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관점에서 그는 죽음을 구하는 자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거짓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거짓의 아비가 바로 마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8:44). 더구나 이 거짓말을 가지고 재물을 얻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만일 그가 재물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징계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재물의 모으는 과정이 비록 정당하지 못해도 주를 위해서 쓰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님은 결코 그들의 행동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짓말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재물이 정당하게 얻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가진 것에 만족하라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주문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욕이 없게 하고, 세상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살라는 말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에는 더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재물에 대하여 만족하되 그의 내면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주님께서 그의 마음에 언제나 함께 하신다면 그는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세상의 것에는 충분한 공급을 얻지 못하게 될지라도 주님으로 인하여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다른 것들을 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 안에서 주님을 멀리하고 돈을 사랑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그는 비참한 결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함이 있는 경건은 큰 이득이 되나니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라.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이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잘못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딤전6:6-10)
바울은 만족함이 있는 경건은 큰 이득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만족하기를 배웠다고 이미 고백한 바가 있습니다(빌4:11). 바울의 권면은 많은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는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이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돈을 사랑함으로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만족함이 없다면 그는 지속해서 재물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며, 결국에는 믿음에서 떠나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만족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사는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모든 일에 대하여 만족하십시오. 특히 물질을 소유함에 있어서 만족하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8. 결론
이 땅의 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믿음의 삶을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것들을 얻어야만 하는 위치에서 살아갑니다. 주님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재물을 얻으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한 가지 자세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즉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가 오직 장차 다가 올 세상(천국)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만족할 것이고, 더 이상 물질로 인하여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