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어떤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음식 드시길 간청하니 그분께서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더라.
38 바리새인이 그분께서 식사 전에 씻지 아니하심을 보고는 이상히 여기더라.
39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지금 너희 바리새인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되 속은 탐욕과 사악함으로 가득하도다.
40 너희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오히려 너희 안에 있는 것들로 자선을 베풀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라.
유대인들의 식사법은 오늘날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하루에 두 끼의 식사를 합니다. 한번은 늦은 아침에, 또 한 번은 늦은 오후에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늦은 오후에 하는 식사가 주식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세 차례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안식일 예배가 마친 후 먹는 점심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전통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식사를 비스듬히 누워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시는 시간은 아침식사로 보이며,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시는 모습은 약간 누우신 자세를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식사하시기 전에 씻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식사 전에는 반드시 씻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의이면서 관습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지켜왔던 것이기도 합니다(막7:3-4). 이것은 단순히 위생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전통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최소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상과의 분리, 혹은 정결의식과 관련한 규범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았던 모습을 바라보는 바리새인은 자신들의 전통을 무시하는 모습을 통해 큰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합니다. “지금 너희 바리새인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되 속은 탐욕과 사악함으로 가득하도다”(39) 그리고는 “너희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40)고 질문합니다. 이 책망은 단순히 식사에 관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들의 마음을 향하여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통과 의식을 통하여 거룩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실상은 탐욕과 사악함으로 가득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겉모습만 깨끗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악한 것들이 가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까지도 모두 바라보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본성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너희 안에 있는 것들로 자선을 베풀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라”(41) 자선이나 구제는 겉으로 볼 때 물질로서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안에 있는 것들”로 자선을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선이나 구제는 그 대상이 가난한 자들을 향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약한 자들로 불리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자선이나 구제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 안에 있는 것”은 먼저 마음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에 자연히 그들이 가진 물질도 따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과 물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그들이 외식적인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거룩함이나 의로움을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자선이나 구제를 함으로서 그들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될 때에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제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뒤로 떠밀려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믿는 자들에게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제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