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눅11:29-32)

조회 수 1125 추천 수 0 2014.05.26 21:21:13

29 무리가 함께 모였을 때에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되 선지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얻지 못하리라.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던 것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게 그러할 것이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라.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회개하였음이라.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어떠한 표적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 그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그들의 가난을 해결하고, 병을 고치는 것과 같은 것들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표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가 정해 놓은 기준 아래서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요나 자신이 특별한 표적을 행한 장본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요나가 물고기 뱃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기적을 나타낼 상황도, 능력도 없었던 상태였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나를 비유로 말씀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설명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요나는 동기와는 관계없이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바로 요나 자신이 표적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구원받은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표적을 일으킨 자가 아니라 표적 그 자체의 모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이들이 논쟁하는 부분들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3일 밤낮을 시간상으로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삼일 밤낮을 계산하여 24×3=72시간으로 어떤 이들은 수난 주간에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 정황으로 미루어 약 36시간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산이 논쟁의 중심에 떠오르게 된 이유는 교회가 점차 의식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날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가령 성수 주일의 개념을 도입하여 주일을 거룩한 날로 규정하고, 성금요일이라고 해서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시간이라고 단정하고 철야기도회를 한다든지, 물론 오늘날도 유대인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을 거룩한 날들로 규정하여 지키고 있는 자들도 상당 수 있는 상황에서 3일 밤낮은 날들을 중요하게 다루는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 지켜지고 있는 날들에 대한 개념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안식일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물론 이것을 현재의 시간에 맞추어 토요일로 규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는 단 한 마디로 정의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곧 안식일의 [주]니라”(마12:8). 우리가 어떤 날들보다 모든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함께하는 우리의 모든 시간들은 곧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날들에 매여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곧 초등원리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갈4:9-11). 우리는 특정한 시간에 매여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시간을 주님과 더불어 살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요나의 비유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오직 한 가지 표적만을 보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의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자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진리 안에서 견고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위해 수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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