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목사가 인성을 갖출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일까? 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주변에는 영성은 뛰어나지만 인격적인 부분이 너무도 결함이 많아 많은 이들을 실족시키는 목사들을 목격합니다. 정작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목사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사역을 하는데 결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성경이 목사들에게 영성뿐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존경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잇다는 사실입니다.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논함에 있어서 성경은 매우 엄격한 잣대로 인격적인 부분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 (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것은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감독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3:2~7)
인격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목사(감독)의 자격을 말함에 있어서 더 많은 부분에서 인격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사(감독)의 자격으로 소개하고 있는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 영성에 속한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인성과 관련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성은 단순히 기도나 성경을 공부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삶을 통해서 훈련되어지고,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통해서 인내하고 연단하는 속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는 믿음의 선배들이 기록한 책들을 통해서 자신을 진단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스승으로서 존경받을만한 분들의 삶을 닮아가기 위해서 힘쓰는 자세를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영성을 위해서도 독서는 필요한 것이지만 인성을 위해서도 독서는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목회는 영성보다는 인성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경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자라 할지라도 사생활이 불건전하고, 존경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면 그의 설교는 외면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고 그를 훌륭한 설교자로 인정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목사라면 성도들에게 자신의 삶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11:1). 과연 오늘날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그대로 따라오라고 말할 수 있는 목사가 얼마나 있습니까? 슬픈 현실이지만 매우 적은 수의 목사들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조차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감히 드러내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성, 혹은 인격은 바른 영성을 가진 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인성을 바르지 못하다면 그의 영성조차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목회자로서의 바른 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