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무도 등잔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이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17 이는 감추어진 것 중에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숨겨진 것 중에 알려지지 아니하고 퍼지지 아니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18 그러므로 너희가 듣는 것에 주의하라.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까지도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라, 하시니라.(눅8:16-18)
33 아무도 등잔불을 켜서 은밀한 곳이나 통 밑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오는 자들이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몸의 빛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몸 전체가 빛으로 가득할 것이나 네 눈이 나쁘면 네 몸도 어두움으로 가득하리라.
35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36 만일 네 몸 전체가 빛으로 가득하고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밝게 빛나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전체가 빛으로 가득하리라, 하시니라.(눅11:33-36)
우리는 이 등잔불의 비유가 누가복음뿐만이 아니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도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너희 빛”이라는 표현을 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제자들 자신이 바로 빛의 역할을 하는 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빛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빛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한 중요한 교훈들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빛의 역할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비추어 밝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빛이 무엇인가에 가려져 감추어져 있다면 그 빛은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빛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비출 수 있는 위치에 놓여져야 하며, 가장 구석까지도 비출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집 안에서 전등의 위치를 천정에 매달아 놓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역할과 관련하여 빛을 “선한 행위”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행위를 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먼저 선한 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빌1:6).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19:17,막10:18,눅18:19).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을 담아 그것으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마12:35,눅6:45). 베드로는 복음을 전한 이후에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하여 “선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행4:9).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선한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것이 “의와 희락과 화평”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롬14:16-18). 우리가 선하 것을 말할 때에는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잣대로 계산하여 선과 악을 나누려 한다면 우리는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권면한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네게 맡긴 그 선한 것을 지키라(딤후1:14)
우리가 주님의 명령대로 세상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세상의 빛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성령님을 의지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함께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또한 그분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