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른 복음만 전할 수 있다면 지역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러나 같은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만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분들을 통하여 같은 복음을 전하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는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왔던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언제나 효과적인 사역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은 누구보다도 실패를 많이 했던 전도자라고 할 수 잇습니다. 특히 아테네에서의 전도는 그를 매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행17;32,33). 그는 당시 최고의 문화를 자랑하던 아테네에서 많은 사람들과 변론을 하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또한 많은 이들이 믿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다른 신들 가운데 한 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곳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결국 물질은 다 탕진하고, 육신은 지쳐서 고린도로 내려갔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자비량 사역에 대하여 말하면서 고린도에서의 일들을 말하지만 사실은 그가 아테네에서 모든 여비를 소비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머물고 있었던 고린도는 사실상 매우 부패되고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어찌보면 바울의 인격에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곳에서 놀라운 결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이같은 전도 방법을 말하는 이유는 실제로 좋은 장소라고 하는 것은 좋은 문화 배경이나 위치를 말하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실제로 좋은 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많이 잠재되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사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전도자들이 교회를 개척하는 장소로 신도시를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초신자들이 아니라 기존의 성도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볼 때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님 앞에서 얼마나 큰 상을 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교회를 시작하려 한다면 좀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얻을 수 있는 지역을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