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에 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매우 단순하게 이해합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형틀이며, 그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틀에서 생각해 보면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피를 쏟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까닭에 십자가의 사건은 성경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사건은 더욱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십자가는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수는 “율법”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 안에서 암송되어지고 있는 사도신경에 의하면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가 죽이지 않았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바로 어린 양, 즉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요1:29).
이 희생 제물을 잡아 피를 뿌릴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제사장에게만 있습니다. 그 까닭에 성경은 그들에 의해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6:21,눅9:22). 이러한 면에서 보면 율법은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만을 두고 볼 때 율법은 예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율법의 역할은 결국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정하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처음부터 사람들과 율법의 관계는 결국 원수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율법은 예수님과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계가 비로소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해결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더불어 율법도 죽고, 그것이 결국 그분을 믿는 우리와 한 몸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 또한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롬6:6).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더불어, 율법과 우리, 즉 옛 사람이 모두 죽음으로서 결국에는 한 몸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된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일까요? 십자가의 사건은 결국 화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먼저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모든 사람들과 화해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영을 가진 신자들은 세상과 분명하게 분리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라도 지옥에 던져지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기도 하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품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