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시리즈(16)
초신자들의 전도
(요4:39~42)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일반적으로 전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적절한 기간 동안 훈련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오히려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도를 하게 될 때에 실족하고, 좌절할 수 있기 때문에 전도하는 행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기를 전도에는 믿음의 분량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초신자들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몇 가지의 사건을 통하여 초신자들의 전도가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성 여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습니다(요4:1-30). 전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현재 같이 살고 있는 그 남편조차도 남편이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전도에 대해서 특별한 교육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사실이 그녀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다가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 사실에 대하여 감격했고,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요4:28-29). 그녀의 전도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듣고 본 것을 말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가왔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도시의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도의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도 아니었고, 또한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다가온 구원의 복음이 너무도 감격스러워서 충동적으로 전도했었던 것입니다. 이 전도는 매우 놀라운 결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요4:42)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복음을 전했던 여인을 무시하려는 의도에서 던진 말이 아닙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 앞에 온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인의 역할은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 여인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예수님 앞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주님께서 인도하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소개하고, 목사를 소개하며, 때로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하면서 교회로 인도하려 합니다. 자신의 종교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힘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질적으로 전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도의 일차적인 목표는 예수님 앞으로 오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예배당 안으로 데려왔더라도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영접하고 거듭나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로서 수가성 여인의 역할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그 사실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성경 안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사도들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시점에서 성전의 아름다운 문이라 하는 곳에서 구걸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는 초신자들의 전도자로서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행3:1~11).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구제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직 후에 그는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해 찬송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는 이미 그가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찬송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주변의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복음의 소식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일은 결국 5,000명에 이르는 회심자를 얻는 결과를 안겨다 주었습니다(행4:4).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하지 않았지만 복음 앞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신자들이 할 수 있는 전도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큰 일을 행하신 후에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하여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막5:19). 물론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신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대해서 전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순간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마5:13~14). 그것은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초신자들일지라도 그들은 충분히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는 초신자라서 전도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매우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초신자이기 때문에 전도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도 역시 매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는 결코 지식이나 능력, 혹은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믿음의 분량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입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 잡혀 전도하는 일에 주저하고 잇지는 않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