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시리즈(10) 눈높이를 맞추십시오

조회 수 2702 추천 수 0 2011.01.18 12:31:15

전도시리즈(10) 눈높이를 맞추십시오(고전9:19-23)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베드로와 바나바는 매우 뛰어난 사도이며, 복음전도자였습니다. 물론 사도라는 이름을 얻기 전의 베드로는 문제가 많았던 제자였지만 그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고, 또한 주님의 교회에 더해졌습니다(2:41,47). 바나바의 경우에도 안디옥교회로부터 바울과 함께 파송을 받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복음전도자였습니다(13:2-3). 그러나 그들은 당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을 받을만한 사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즉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도착하자 그 자리를 피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는 바나바도 함께 있었고,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2:11-13). 그들은 스스로 복음 전도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바울의 모습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접근할 때는 유대인과 같이 행동했습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 없는 자나 약한 자들 앞에서 스스로 그들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는 단 몇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들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많은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는 지나치게 전통과 의식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라는 공간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칫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여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는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한다든지, 십분의 일에 해당되는 수입은 헌금을 해야 한다든지, 매주 주일은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당연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의 교회를 찾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것들을 지킬 수 있을 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복음 전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물론 복음 전도자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창녀를 구원하겠다고 음행할 수는 없으며, 감옥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겠다고 스스로 범죄를 저지를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 마음의 눈을 열어서 그들의 수준에 맞는 대화와 설득을 할 수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복음 전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다양한 전도 방법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보통 복음을 전했던 대상은 각 지역에 있는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이었던 바울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도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입은 자였습니다(9:15). 그 까닭에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했습니다. 아테네에서의 전도는 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매우 철학적인 도시였습니다. 그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택한 것은 만나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17:17). 그는 이곳에서 많은 결실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더 많은 변론을 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결국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테네를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수의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아레오바고의 일원인 디오니시우스와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또 그들과 함께한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17:34). 바울이 매우 풍부한 지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아테네 전도는 어찌보면 당연한 방법과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그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자식이 드러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을 성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조건과 배경, 그리고 학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에 대하여 배설물(dung)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간다고 고백합니다(3:7-14). 심지어 그는 복음전도자가 되기 위하여 이 세상의 지혜나 아무 쓸모없게 될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전2:2-6). 그는 오히려 우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위에 서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많은 지식이 훌륭한 복음 전도자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그들의 주장을 결코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내려놓고, 자신 앞에서 복음을 들으려는 대상의 수준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수준의 대화를 통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이 말은 결코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아테네 전도처럼 때로는 변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을 앞세우고 복음을 전하려 한다면 오히려 복음은 가려지고, 자신의 영광만 드러나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오늘날 복음 전도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모범적이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행동은 고린도에서의 사역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함께 머물며 일합니다(18:1-3). 이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의 고린도 교회 사역을 보면서 자비량 사역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바울이 교회가 사역자들에 대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성경에 기록해 둠으로서 더 이상 논쟁의 가치가 없도록 했습니다(딤전5:18). 그는 고린도에서 자신이 복음전도자이기 이전에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고린도라는 지역은 어떤 지역보다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열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생각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복음전도자이기 이전에 천막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바울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복음 전도자가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가져다 주는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대화를 이끌어 냄으로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능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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