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라는 분야를 학문으로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에 관하여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철저히 현장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회학이라는 분야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처음 시작하는 자들에게 막연히 나가서 전하라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매우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노련한 목회자라도 목회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으며, 홀로 감당해 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누구도 목회학의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계속해서 변하는 세상에서 다양한 문화와 환경에 따라 목회의 환경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이 말하는 목회의 원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의 생활원리를 오늘날 환경에 적용시킨다면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도 전에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화기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주로 불륜을 저지르는데 사용했습니다. 이후에 나온 비디오나, 컴퓨터와 같은 것도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음란물의 유포나 성적타락의 도구로 사용되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기를 손 안에 들고 다니고 있으며, 각종 영상이나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이미 일상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습니다.
최근 많은 논쟁이 있어왔던 음악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찬송가의 기본을 이루는 곡조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카톨릭 교도들은 사탄음악으로 정죄하여 교회에서 추방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불려지는 대부분의 찬송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음악입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불려진 찬송을 제외한 곡들은 교회로부터 추방을 당하고, 수백 년 전에 불려진 찬송만이 정통으로 인정받아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과연 현대 음악은 사탄음악이라고 정죄할 수 있는 것일까요?
목회학은 성경 안에서 가르치고 있는 원리를 제외하고는 결코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그것은 서로가 문제를 보고 기도하며, 토론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새로운 지식을 얻겠다고 목회학에 입문하겠다고 한다면 저는 당장 말리겠습니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도 없으며, 정답도 없고, 다만 시대적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보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