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아는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단순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듣는 자들은 전하는 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듣는 자가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다면 전도자는 일상생활에서도 언제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상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전도는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관계전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이미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일상생활은 굳이 그의 입에서 복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더라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실제로 복음전도에 큰 영향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누가 불성실하고, 거짓말을 하며, 건강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자의 말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믿을만한 사람의 말을 듣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복음전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도 온유하며 겸손한 사람으로 보여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가 가질 자세에 대하여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며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교만함과 거짓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말하게 된다면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만일 복음을 듣는 자가 전하는 자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자는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오히려 전하는 자신보다 상대방을 낫게 여기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빌2:3). 그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씀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전하는 자는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롬10:17).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복음을 듣고자 했을 때 그들에게 들려줄 말씀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수치스러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훌륭한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경을 묵상하고, 필요한 말씀들을 암송하는 수고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도자가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는 언제나 복음전도를 향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롬10:1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장 소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자세는 복음전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복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자신의 생각과 의지만으로 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전도자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을 통하여 아는 바와 같이 영의 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고전2:14), 우리의 지식과 논리를 가지고는 복음 전도가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하는 자가 반드시 성령님의 도움을 입어야 합니다. 바울도 자신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고전2:4)으로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착각을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이 몇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구원에 이르게 했으며, 침례를 주었노라고 자랑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그가 말을 했을지라도 듣는 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의 말과 함께 하는 성령님이십니다. 아무리 현란한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려 해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단 한 사람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마가의 마락방에 모여 있었던 120명의 제자들을 보십시오(행1:15). 그들은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도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오순절이 되기 전까지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할 때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그들 앞에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되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분들은 이처럼 교리적인 접근을 하여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한 교리적인 가르침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말씀 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신비를 말하게 하실 것을 구하라”(골4:3)고 부탁합니다. 그는 매우 능력 있고, 지식이 풍부한 복음 전도자였지만 이처럼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가진 모든 배경조차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합니다(빌3:1-12).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복음 전도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