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반자로 여기거든 마치 나를 받아들이는 것 같이 그를 받아들이라. 만일 그가 네게 잘못을 했거나 조금이라도 빚을 졌거든 그것을 내 회계장부에 넣으라. (몬1:17-18)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로 그의 아내 압비아와 아들 아깁보와 함께 교회를 섬겼던 자입니다. 그의 가정은 노예를 둘 정도로 매우 부유했으며, 그의 가정은 모임을 갖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커다란 아픔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집에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도망을 쳤고, 심지어 도둑질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빌레몬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노예들일지라도 선하게 대해주었을 터인데, 오히려 그를 배반하고 떠났던 것입니다. 당시의 전통으로보면 그는 사형에 해당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망자였던 오네시모가 노예의 신분으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복음을 듣고 회심한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주인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을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는 편지 한 장을 받아들고는 빌레몬에게 향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용서하라”는 내용입니다.
빌레몬과 바울의 만남은 3차 전도여행이 있었을 때입니다. 바울은 두란노에서 약 3년간을 머물면서 가르쳤는데, 에바브로와 함께 골로새에서 에베소로 올라가던 빌레몬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문제는 이 교회가 시작된 이후에 오네시모가 도망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용서할 것을 권하는 바울의 편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를 노예로서가 아닌 형제로서 그를 받아들이라는 바울의 권면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을 주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형제로서 동등한 입장에 서서 오네시모를 대해야만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권면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 만일 그가 네게 잘못을 했거나 조금이라도 빚을 졌거든 그것을 내 회계장부에 넣으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결정을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고정관념들과, 편견들, 그리고 자존심마자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강력하게 그렇게 하도록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빌레몬의 결정은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를 훌륭하게 이끌었고, 지도자로서 흠잡을 것이 없이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자였습니다. 그가 이처럼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네시모을 품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매장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고, 배반하는 자가 있다면 저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그들에 대하여 용서할 것을 권합니다. 만일 우리가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치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가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감옥에 가두는 자와 같습니다(마18:34). 그는 결국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격을 잃은 자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꿈꾸는 자라면 넓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라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주님은 더욱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빌레몬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